[프리미엄 리포트]‘공짜 점심’에 교육의 質 뚝!… 교사 줄이고 교실보수 미뤄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10일 03시 00분


[미로에 갇힌 무상복지]<上>복지 봇물에 백년대계 휘청

무상급식과 무상보육 등 각종 무상복지 정책이 삐걱대고 있다. 예산이 넉넉하면 초등학생이나 중학생뿐 아니라 고교생, 나아가 대학생도 ‘공짜 점심’을 주면 좋겠지만 중앙정부는 물론이고 각 시도와 교육청 모두 ‘돈이 없다’며 아우성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정책 순위에서 무상복지에 밀린 사업도 적지 않다.

경기도교육청은 내년부터 계약직 직원 인건비를 564억 원 줄인다. 수석교사와 일부 기간제 교사는 전혀 채용하지 못한다. 진로상담교사와 보건교사도 대폭 줄어든다. 교육감 공약으로 확대 추진하려던 ‘교원 연구년’은 대상 교사 358명의 예산 179억 원이 전액 삭감돼 내년부터 잠정 중단된다. 교원힐링센터와 보건교육센터, 경기학습클리닉센터 건립은 보류됐다. 무상급식 등 복지예산이 크게 늘어나면서 교육의 ‘질’은 밀려나는 상황이다.

○ 무상복지에 교육사업 차질

전남도교육청은 학교 시설사업비가 해마다 큰 폭으로 줄고 있다. 강당 신축과 특별교실 증개축 같은 시설 예산이 2009년 1210억 원에서 지난해는 401억 원으로 67%가량 급감했다. 학교 외벽 균열보수, 방수작업 등 안전 관련 교육환경개선 사업비도 1175억 원에서 지난해 906억 원으로 23% 삭감했다. 교육청 관계자는 “교육환경개선 사업비 감소가 누적되면 나중에는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대전시 관계자도 “무상급식에 너무 많은 예산을 지원하다 보니 힐링캠프 같은 청소년 선도사업도 하기 어렵다”며 “새로운 교육사업 발굴은 엄두도 못 낸다”고 말했다.

전남도교육청은 내년 예산이 2000억 원가량 부족할 것으로 보고 교직원 명예퇴직을 절반으로 줄이는 한편 ‘농어촌 에코버스’ 등 주요 정책도 최소한만 도입할 것을 검토하는 등 예산 절감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광주시교육청은 최근 은행에서 ‘급전’ 100억 원을 빌렸다. 정부 교부금은 늦고 당장 지급해야 할 공사대금과 물품구입비 등은 쌓였기 때문이다. 이 교육청 관계자는 “내년 재정이 1900억 원가량 부족할 것으로 예상돼 무상복지를 최대한 줄이는 방법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교육감들의 무상급식 확대 공약도 재정난에 부딪혀 ‘빈말’이 되고 있다. 인천시교육청은 교육감 공약인 중학교 무상급식을 내년부터 시행하려 했지만 인천시와 기초자치단체의 예산 분담이 확정되지 않아 불투명한 상태다. 교육청은 초등 무상급식 예산 319억 원을 인천시에 요청했지만 244억 원만 편성됐다. 중학교 무상급식은커녕 초등학교 급식에도 차질이 예상된다. 인천시 관계자는 “재정 압박이 심해 지방채 발행을 확대하거나 급식비 정부 지원이 이뤄지지 않으면 어려운 상태”라고 말했다.

부산시교육청은 중학교 무상급식을 내년부터 도입할 계획이었으나 일단 1년 정도 미루기로 했다. 부산시는 내년 초등 무상급식 예산을 50억 원 늘려달라는 교육청의 요구를 거절했다. 김석준 부산시교육감은 “정부 교부금이 크게 줄어드는 데다 지자체의 지원도 어려운 상황이어서 교육재정이 급속히 악화되고 있다”며 “중학교 무상급식 유예에 따른 예산 106억 원은 교육환경 개선사업에 활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충북도교육청도 교육감 공약인 무상급식 확대를 예산 사정으로 보류하기로 결정했다.

○ 소방도로도 못 내는 실정

무상급식 등 복지 수요는 치솟고 있지만 지자체들은 주민을 위한 최소한의 민원조차 해결해주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다. 지자체 관계자들은 “복지가 봇물 터지듯 하다 보니 지자체 기능이 마비되는 게 아니냐는 걱정이 많다”고 전했다.

광주 동구는 숙원사업인 도시재생 선도지역에 선정됐지만 구청이 부담해야 할 50억 원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또 옛 위생매립장에 짓고 있는 다목적체육관 건립의 구청 부담금 17억 원을 확보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광주 남구도 내년 6월 준공 예정으로 건립하고 있는 다목적체육관에 공사비 38억 원이 모자라 공사가 중단될 처지다. 광주 서구에는 30년 된 낡은 구립어린이집을 다시 짓고 비좁은 동사무소를 신축해 달라는 민원이 이어지고 있지만 예산이 없어 손을 대지 못하는 실정이다. 서구 관계자는 “도로 개설도 여러 곳 필요하지만 전혀 추진하지 못한다”며 “표를 앞세운 무상복지가 한계에 다다른 것 같다”고 말했다.

재정자립도가 15% 수준인 대구 서구는 복지예산에 기반시설 보수공사 등 필수 예산을 제외하면 자체 사업에 쓸 예산은 거의 없다. 낡은 동주민센터 신축이나 아스팔트 포장, 인도 블록이나 가로등 교체도 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서구 관계자는 “문화회관의 음향장비 교체비용 5000만 원이 없어 소리도 제대로 안 나오는 마이크를 고치면서 대충 쓰고 있다”며 “대응 투자할 여력이 없어 복지사업 하기가 겁이 난다”고 말했다. 서구는 예산(2290억 원)의 59%(1341억 원)가 복지예산이다.

대구 남구는 재정자립도가 10%로 전국 최하위권이지만 복지예산은 전체 예산(2231억 원)의 57%인 1272억 원이다. 600m짜리 소방도로 개설도 20년 동안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남구 관계자는 “지방채 발행은 재정 여건을 더 어렵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쉽지 않다”며 “답답해서 에너지 절약과 일상적인 경비절약 운동까지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전국종합 / 대구=이권효 boriam@donga.com / 무안=정승호 기자
#무상복지#무상급식#무상보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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