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북 메구미 약물사망 파문]
메구미 감시하던 보위부 수뇌, 북측 특별조사위원장 맡아
日 대표단 10월 방북 성과없어
일본인 납북자 문제 해결을 위한 북-일 교섭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납북자 문제 재조사를 담당하는 부서가 바로 북한의 국가안전보위부라는 점에서다. 국가안전보위부는 우리의 국가정보원과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다.
동아일보가 6일 입수한 요코타 메구미(橫田惠) 사망 배경 극비 보고서에 따르면 국가안전보위부는 일본인 납북자 문제의 상징인 메구미를 집중 감시해왔고, 사망한 뒤에는 직접 시신 유기를 지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납북자 인권 유린의 책임자가 이 사건 재조사를 주도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일본 정부 납치문제대책본부가 만든 7개 질문에 자필로 답변한 증언자들은 “1977년 납치된 메구미는 건강, 정신상태가 좋았으나 국가안전보위부의 심한 조사로 건강 상태가 악화됐다”고 밝혔다. 메구미가 사망한 평양 49호 예방원(정신병원)에서 완전격리병동에 수용됐을 때도 국가안전보위부가 수시로 감시하고 방문자까지 차단했다고 한다. 1994년 4월 10일 메구미가 사망한 뒤 같은 달 15일 메구미의 시신을 다른 시신 5구와 같이 구덩이에 파묻으라고 지시한 장본인도 보위부였다.
그런데도 북한과 일본은 올해 7월 납북자 문제 해결을 위한 북-일 교섭 사실을 발표하면서 북한의 납북자 특별조사위원회의 위원장을 서대하 국가안전보위부 부부장으로 발표했다. 공동 부위원장은 김명철 보위부 참사이고, 4개 조사 분과 중 핵심인 납치피해분과 위원장은 강성남 보위부 국장이었다. 납북 문제 재조사의 핵심을 모두 보위부가 맡은 것. 그야말로 “범죄자가 수사에 나섰다”는 점에서 북-일 교섭에 험난한 장애물이 버티고 있는 셈이다.
일본 정부는 지난달 말 정부 대표단을 북한에 보내 서대하와 면담했지만 실질적인 성과는 얻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방북 보고를 받은 뒤 “북한이 과거 일본인 납치 조사에 구애받지 않고 새로운 각도에서 철저히 조사하겠다는 방침을 보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북한이 조사 진행 상황을 설명했으나 구체적인 정보가 새로 포함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평가했다. 일본인 납북자 가족들은 “납치 피해자에 관한 정보가 전혀 없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은 9일 “북-일 교섭은 사실 납북자 문제 해결이라는 본궤도에도 못 들어가서 전망이 어둡다”며 “일본은 납북자 문제를 먼저 얘기하자고 했지만 북한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북한 지역에 남은 일본인 배우자, 일본인 유골 반환 문제 등을 먼저 얘기하자고 한 상태”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2002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일본 정부가 인정한 공식 납북자 중 4명의 납북 사실을 부인했다가 이 중 2명의 납북을 북한이 인정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하지만 메구미 문제가 풀리지 않는 한 일본 여론을 움직이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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