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코타 메구미(橫田惠) 사망에 대한 동아일보의 단독 보도 이후 일본 정부와 언론 반응을 지켜보면서 갖게 된 생각이다. 일본 정부의 공식 기구인 납치문제대책본부가 만든 보고서를 인용한 메구미 사망 보도인데도 일본 정부가 부인한 것은 놀라웠다.
그전에도 일본을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어느 정도 예측은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 보니 그 생각은 틀린 것 같다. 일본 정부와 여론이 메구미 보도와 군 위안부 문제를 대하는 상반된 태도에선 어떠한 일관성도 찾을 수 없었다.
메구미 보도가 나오기 이전인 올해 8월.
아사히신문은 위안부 특집기사에서 “제주도에서 다수 여성을 강제로 끌고 갔다”고 증언한 일본인 요시다 세이지(吉田淸治) 씨의 주장에 기반을 둔 기사들을 취소한다고 밝혔다. 최근 제주도를 방문했지만 요시다 씨의 과거 증언을 뒷받침할 얘기를 얻지 못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자 일본 우파의 아사히신문 때리기가 시작됐다. 심지어 집권 여당인 자민당 일각에선 일본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관방장관 담화를 대신하는 새 담화를 발표해야 한다는 주장을 공론화하기도 했다. 일본 외무성도 홈페이지에서 ‘위안부 강제 동원’을 인정한 글을 삭제하며 위안부 전체 문제에 물 타기를 시도했다. 지엽말단의 이유를 들어 “일본 정부나 군이 위안부를 강제로 연행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 수많은 세월이 흐른 뒤에 제주도를 방문한 기자가 과거 얘기를 뒷받침할 자료를 찾지 못했다는 것만으로 위안부 강제모집 사실 자체가 없어지는 것이 아닌데도 말이다.
만약 본질과 상관없는 지엽적인 문제로 전체를 흔드는 게 일본 방식이라면 메구미 생존의 전제가 흐트러진 만큼 이젠 북-일 교섭의 전체 판을 다 바꾸는 게 맞지 않을까.
일본 정가의 군 위안부 문제 접근 방식을 메구미 사망 문제에 적용하면 어떤 방향으로 흘렀을까 하는 상상을 해봤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내각은 메구미 생존을 전제로 북-일 교섭과 납북자 문제 해결에 나섰다. 그런데 근본적인 문제에 해당하는 메구미의 사망이라는 사실이 나타났다. 그렇다면 아베 정권의 대북정책 전체를 다 바꿔야 일관성이라도 찾지 않았을까. 군 위안부 기사를 이유로 아사히 불매운동이 벌어졌듯이 메구미 사망이 확인된 만큼 아베 정권의 정책에 대한 불신 및 폐기 운동이라도 벌여야 하는 게 아닐까. 하지만 그런 움직임은 찾을 수 없다. 그렇게 되기 싫어서 메구미 사망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일본 정치권과 여론은 메구미 사망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여전히 살아있는 것처럼 믿고 있다. 일본 전역을 돌며 1400여 회에 걸쳐 강연해오던 메구미의 어머니 사키에(早紀江·78) 씨만이 강연 중단이라는 행동으로 답했을 뿐이다.
메구미가 죽었다고 인정하지 못하는 일본 사회도 놀라울 따름이다. 메구미 문제 자체가 신격화한 집단적 기류에 짓눌렸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유야 어찌 됐든 아베 정권의 정책을 계속 밀고 가도록 허용하는 이런 일본의 분위기가 우려된다. 중국 위협론이나 강한 일본을 만들겠다는 명분에 법치 기반까지 흔들리고 있어서다. 지금 아베 총리의 움직임을 보면서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군국주의가 활개를 치던 일본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역사는 되풀이된다. 하지만 정확하게 똑같이 되풀이되지는 않는다.’ 한일 관계의 미래와 일본 사회에 대한 희망을 이런 명제에나 걸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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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14 14:32:28
놀라는 것은 객관적인 사망의 증거가 존재하지 않는데 사망과 짖고 있는 분입니다.거짓말이 일상적인 나라에서는 믿을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만, 일본에서는 하나의 사실에 대해서 객관적인 검증이 요구됩니다.거짓말을 반복하는 것으로 진실하게 되는 국가와의 차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