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명만 찍는 현행 MVP 투표 제도 문제
1위에 가장 높은 점수 주고 순위별 차등
합산하는 ML ‘보르다’ 방식은 어떨까요
넥센 밴헤켄(35·사진)이 새로운 기록을 썼습니다. 프로야구 33년 역사에서 20승을 거두고도 최우수선수(MVP) 투표에서 0표를 받은 건 밴헤켄이 처음입니다. 지난해까지 20승 투수 15명(중복 포함) 중 6명(40%)이 MVP로 뽑혔던 걸 생각하면 밴헤켄은 확실히 박복(薄福)했습니다.
MVP 시상식 현장에서도 ‘밴헤켄 0표’는 단연 화제였습니다. 밴헤켄보다 승수가 적은 삼성 밴덴헐크(29)는 두 표로 체면치레는 했으니 더욱 그랬죠. 기자들 사이에서는 “밴덴헐크는 지역(대구) 기자들 표를 받을 수 있었지만 밴헤켄은 넥센 동료들과 표를 나눠 가져야 해 기자들이 사표(死標)를 던지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습니다.
네, 사실 저부터 밴헤켄에게 투표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저는 이 꼭지를 통해 쓴 것처럼 제 눈에 올 시즌 가장 가치 있는 선수(Most Valuable Player)로 보인 넥센 강정호(27)에게 표를 던졌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올해 MVP가 누가 될지 내기를 하자’고 했다면 저 역시 실제 MVP 수상자인 넥센 서건창(25)에게 베팅했을 겁니다.
서건창에게 표를 던진 동료 기자 77명(77.8%)도 비슷한 생각을 했으리라 믿습니다. “내 표는 수상자에게 던지겠다”며 선거에서 우세해 보이는 사람에게 투표하는 ‘밴드웨건 효과’가 나타난 것이죠. 이 때문에 실제로는 다섯 후보 모두 MVP 경쟁력을 갖췄는데 표는 서건창이 일방적으로 많이 가져갔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MVP, 최우수신인선수 투표 제도를 손질하자고 제안드립니다. 제가 생각하고 있는 방식은 순위에 따라 각기 다른 점수를 부여하는 ‘보르다 투표’ 방식입니다. 현재 메이저리그에서 개인 수상자를 결정할 때 채택하고 있는 방식이지요. 미국야구기자협회(BBWAA)는 메이저리그 MVP 수상자 투표 때 1위 선수에게는 14점을 주고 2∼10위에게는 9∼1점을 줘 수상자를 결정합니다.
사실 한국야구기자회도 원년부터 1995년까지는 이와 비슷하게 ‘점수합계’ 방식으로 MVP와 최우수신인선수를 뽑았습니다. 그러다 1995년 OB 김상호(49)와 LG 이상훈(43)이 MVP 경쟁을 벌이던 중 ‘몰표 사건’이 공론화되면서 언론사별로 쿼터 제한을 두고 득표수로 수상자를 결정하는 현행 제도로 바뀌었습니다. 일부 선배 기자들이 후배들에게 특정 선수를 찍으라고 강요하는 일이 있었던 겁니다.
하지만 이제 언론사도 민주화(?)가 많이 이뤄져 선배들이 표를 강요하는 구악(舊惡)은 벌어지지 않을 겁니다. 게다가 1972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케네스 애로가 증명했듯 어떤 투표 제도도 공동체의 일관된 선호 순위(ranked preferences)를 찾지는 못합니다. 완전무결한 투표 제도는 없는 셈이죠. 그렇다면 7년 만에 나온 20승 투수가 단 한 표도 얻지 못하는 현행 제도보다는 좀 더 다양한 견해를 반영할 수 있는 보르다 투표가 더 나은 방식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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