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딩크족의 자유? 아이가 주는 기쁨은 억만금 줘도 못사”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24일 03시 00분


[출산 없이 미래 없다]<5>힘든 만큼 커다란 양육의 행복

은행원 이윤희 씨(38)는 2004년 결혼하면서 남편과 ‘딩크(DINK·Double Income No Kid)족’으로 살겠다고 약속했다. 둘 다 “아이는 짐이 될 뿐이니, 우리끼리 여유롭고 즐겁게 살자”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생각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 씨는 결혼 5년차부터 잦아지는 부부 싸움과 직장생활의 무료함 때문에 우울증이 생겼다. 결국 남편은 “우리의 관계를 끈끈하게 이어주고 삶의 활력을 줄 아이가 필요한 시점 같다”며 “아이를 낳자”고 제안했다.

이후 이 씨의 삶은 어떻게 됐을까.

뒤늦게 두 자녀를 얻은 이 씨는 “출산은 인생의 전환점”이라고 말한다. 주변에 애를 낳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여성이 있으면 아예 붙잡고 출산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하는 전도사가 됐다. 그녀는 “남편과 내가 낳은 생명체가 걷고, 뛰고, 말하는 과정을 보는 그 자체가 기쁨이고, 부부 사이에 공유할 큰 추억이 매일 탄생하는 느낌”이라며 “무료했던 직장생활도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부모가 되겠다’는 마음에 이전보다 적극적으로 임하게 됐다”고 말했다.

○ 작지만 큰 기쁨


육아는 ‘전쟁’이라고 불릴 정도로 어려운 순간들이 끊임없이 닥친다. 이런 어려움을 감수하고 육아전쟁을 선택한 부모들에게 아이가 주는 기쁨은 어떤 것일까. 지난달 저출산 문제 해소를 위한 서울시 UCC경연대회에서 1등상을 수상한 ‘아기를 만나 가장 행복했던 순간 베스트 10’에는 부모들이 육아를 하며 느낀 소소한 기쁨이 담겨 있다.

조사에 응한 사람들은 현재 아이를 키우고 있는 서울시내 주부 50명. 자녀가 아직 학교에 들어가지 않은 30대 주부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이 선택한 10가지 행복 중 가장 많은 사람이 꼽은 행복의 순간은 ‘아이가 크게 소리내어 웃을 때’. 영상에는 잠에서 막 깬 갓난아이가 눈을 꿈뻑꿈뻑하다가 엄마를 보고 생긋 웃는 장면이 나온다. 이 아이의 엄마는 “웃는 내 아이를 볼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다. 아이의 웃음이 하루 동안 있을 수많은 전투 상황들을 이겨낼 힘을 준다는 것이다.

또 다른 주부들은 ‘걷기 뛰기 등 발달단계에서 첫 성공을 거두었을 때’ 행복을 느낀다고 답했다. 설문에 응한 한 주부는 누워서 안간힘을 다해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힘을 주던 아이가 뒤집기에 성공하는 모습을 촬영했다. 영상에는 “어머! 우리 아기. 잘했다. 우리 아기”라고 울먹이는 엄마의 떨림이 그대로 담겨 있다.

한 달 전 둘째를 출산한 김하연 씨(28)는 “이 영상에 나온 소소한 기쁨의 순간들은 내가 대학에 붙거나, 취업을 했을 때 느꼈던 희열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라며 “억만금을 줘도 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3년 전 결혼한 김 씨는 “준비가 안 된 상태로 첫째를 낳아 힘들었지만, 아이가 날 닮아가며 성장해 가는 모습을 보는 건 기쁨 그 자체였다”며 “넉넉한 형편은 아니지만 그 행복을 다시 한 번 느끼고 싶어 어렵게 둘째를 출산하게 됐다”고 말했다.

저출산 문제 해소를 위한 서울시 공모전에서 웹툰 부문 최우수 작품으로 뽑힌 ‘엄마연습’. 이 만화에는 ‘출산과 육아의 과정이 힘들지만 아이를 통해 세상을 아름답게 볼 수 있게 됐다’는 엄마의 고백이 담겨 있다. 서울시 제공
저출산 문제 해소를 위한 서울시 공모전에서 웹툰 부문 최우수 작품으로 뽑힌 ‘엄마연습’. 이 만화에는 ‘출산과 육아의 과정이 힘들지만 아이를 통해 세상을 아름답게 볼 수 있게 됐다’는 엄마의 고백이 담겨 있다. 서울시 제공
○ 양육은 나를 완성하는 과정

출산의 개념을 정의했던 레비(M. J. Levy) 박사는 “어떤 사회든 인구이입에만 의존해 지속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출산과 양육은 아이만 자라게 할 뿐 아니라 한 사람이 부모가 되면서 성장해가는 인생의 중요한 사건인 동시에 사회를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양육은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하게 만드는데, 이렇게 사람들이 부모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사회의 가치들이 유지가 된다는 것이다. 레비 박사에 따르면 출산은 단순히 인구의 수를 더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정신적, 물질적 기준들을 유지하게 만드는 과정이다.

육아일기 총 6442편을 통해 양육 과정에서 나타나는 개인의 심경 변화를 다룬 한 국내 논문은 출산의 의미에 대해 “부모는 자식을 갖게 되는 순간부터 다양한 긴장감을 느낀다. 이 긴장감을 해결해 가는 과정에서 나오는 모성, 부성이 한 사람을 완성한다”고 말했다. 임신 과정에서 자녀를 위해 건강을 관리하고, 출산 이후부터는 자녀의 안정적인 성장을 위해 자신의 언행과 경제적 능력, 도덕적 가치관 등을 끊임없이 고민하며 부모가 되어가는 과정이 곧 성장이 된다.

○ 말년까지 영향 주는 정서적 보약

“4년 전 암을 판정받고 가장 먼저 떠오른 얼굴은 내 자식들이다. 출산을 앞둔 첫째, 공부를 마치지 못한 둘째, 군대에 가 있는 막내아들까지. 고통스러운 항암치료를 포기하고 ‘지금 죽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 때마다 자식들이 내게 생의 의지를 불어넣었다.”(57세 사업가 정태용 씨)

우종인 한국치매협회장(전 서울대 의대 정신과 교수)은 “나이 들수록 정신건강, 생에 대한 의지 등은 자식 유무에 따라 크게 차이가 난다”고 말했다. 자식이 없는 경우, 부모님과 형제자매 등이 먼저 세상을 떠나면서 주변에 상호작용을 할 만한 관계망이 줄어들게 된다. 사회적 관계망이 끊기면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인지작용이 중단되는 현상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렇게 사회적 관계망이 끊어지면 우울증, 무기력증, 불안증 등 문제가 생겨 정신건강을 위협한다는 것이다.

정신건강 상태는 치매 발병률에도 영향을 준다. 스웨덴의 카롤린스카 의대 연구진에 따르면 핀란드인 144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부부-자녀’로 이뤄진 가족을 이루고 사는 사람과 비교했을 때 중년에 이혼하고 혼자 사는 사람은 치매 위험이 3배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중년 이전에 젊은 나이부터 독신으로 사는 사람은 그 위험이 6배 더 높아진다. 우 회장은 “고독감은 치매 발병률에 영향을 준다”며 “고독감을 많이 느낀 사람일수록 노년에 치매에 걸릴 확률도 높다”고 덧붙였다.

▼ 자녀있는 은퇴자, 무자녀보다 삶의 만족도 2배 높아 ▼

손자 손녀 양육 경험도 만족도 높여

자녀를 키우는 과정은 보람도 있지만 ‘육아전투’라고 불릴 만큼 힘든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자녀는 시간이 지날수록 삶의 만족도에 큰 영향을 미친다. 노년이 될수록 자녀가 없는 사람보다는 많은 사람이 행복도가 높은 편이다. 특히 손주를 돌보며 ‘제2의 양육’을 통해 더 많은 행복을 느끼는 경우도 적지 않다.

김대환 보험연구원 고령화연구위원의 ‘은퇴자 삶의 만족도 결정 요인 조사’에 따르면 자녀와 남편이 있는 고졸 이상의 여성이 은퇴 후 가장 행복감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배우자보다는 자녀가 행복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조사는 국민노후보장패널 데이터를 활용해 만 50세 이상 가구원을 가진 전국 5000여 가구와 그 가구에 속하는 중·고령자 9만7418명을 분석 대상으로 했다.

자녀가 있는 은퇴자의 삶에 대한 만족도는 5점 만점에 3.5점이었다. 무자녀 은퇴자(1.7점)보다 2배 이상 높은 수치다. 배우자가 있는 은퇴자는 그렇지 않을 때보다 삶의 만족도가 1.57배 높았다. 김 연구위원은 “배우자 유무보다 자식 유무가 노년의 행복에 더 큰 영향을 끼쳤다”며 “자식은 기르기는 힘들지만 노년에는 행복으로 돌아온다는 게 드러났다”고 설명했다.

손자·손녀를 돌보면서 느끼는 만족도도 상당했다. 전혜정 연세대 아동가족학과 교수의 ‘손자녀 양육 경험이 중노년 여성의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손주를 돌본 경험이 있는 할머니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삶의 만족도가 높았다.

10세 이전의 손주를 돌본 경험이 있는 노인 여성의 삶에 대한 만족도는 100점 만점에 61점으로 손주 양육 경험이 없는 여성(57.6점)보다 높았다. 전 교수는 “황혼 육아가 노인을 힘들게 한다는 편견과 달리 양육 과정에서 얻게 되는 감정들이 노인들의 정신건강에 긍정적 영향을 준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수연 기자 sykim@donga.com
#출산#딩크족#양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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