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대학수학능력시험 출제 오류를 인정하면서 수능 시스템 개혁 방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수년 동안 출제 오류를 지켜본 학교 현장에서는 믿을 수 없다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
○ 정부, 대대적 제도 개혁 예고
교육부는 24일 영어와 생명과학Ⅱ 과목의 복수정답을 발표하며 “작년에 이어 또다시 오류가 반복된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수능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절감한다”고 사과했다. 교육부는 “수능 업무를 위탁 수행하는 평가원에서 앞으로 같은 문제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다”며 “근본적으로 개편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교육부는 제도 개선을 위해 태스크포스(TF)를 꾸릴 예정이다. 가칭 ‘대학수학능력시험 출제 및 운영 체제 개선위원회’다. 그동안 교육부와 평가원이 수능 전반의 문제점을 간과했다는 지적에 따라 TF 위원장을 외부 인사로 선임하는 등 외부 전문가를 중심으로 위원회를 구성할 계획이다. 교육 전문가뿐만 아니라 법조인 등 다양한 분야의 인사들이 참여하게 된다.
TF는 현재 수능 출제 시스템의 문제점을 세세히 살필 예정이다. 그동안 교수 중심의 출제와 교사 중심의 검토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에 따라 교수와 교사의 역할 자체에 변화를 주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출제 교수가 일선 고교의 학습과정과 고교생의 수준을 파악하지 못해서 난이도 조절에 실패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된 데 따른 것이다.
교육부는 12월 중 TF를 구성하고 학교 현장 의견 수렴을 거쳐 내년 3월 새로운 수능 제도를 발표할 계획이다. TF에서 만들어진 새 수능 제도는 현재 고2 학생들이 시험을 치르는 2016학년도 수능부터 적용된다. 그 전에 치러질 6월 모의평가에도 새 수능 제도가 일부 반영된다.
○ 근본 개혁 필요… 학교 현장은 분노
정부가 대입을 주도하는 현재의 시스템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초중고교 12년의 학력을 단 한 번의 수능으로 정부가 평가하다 보니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
특히 출제를 주관한 교육부와 평가원에 대한 비판이 거세다. 한국교육정책교사연대 이성권 대표(서울 대진고 교사)는 “사실상 수능에 대한 사망선고나 다름없다”며 “학생의 평가 권한을 국가가 독점하고 있었다는 게 근본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학생부 전형을 확대하고 고교 교사에게 학생을 평가할 권한을 돌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도 이날 성명에서 “그동안 수능은 대학입시 변별력 확보라는 명목을 내세워 고교 교육과정만으로는 풀기 어려운 문제들이 출제됐다”며 “그마저도 난이도 조절에 실패해 물수능과 불수능을 반복했다”고 비판했다. 교총은 수능 제도를 절대평가 성격의 문제은행식 국가기초학력평가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교육부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교육계와 학교 현장의 분노와 불신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이날 발표된 대책은 이미 지난해 수능에서 세계지리 출제 오류 논란이 터졌을 때 나왔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 고교 교사는 “수능 출제 오류 논란이 수년째 이어져 왔다”며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데 소를 잃어도 너무 많이 잃었다”고 비판했다.
고1 자녀를 둔 학부모 양미진 씨(45)는 “어떻게든 자녀들을 좋은 대학에 보내겠다고 엄마들이 초등학교 때부터 학교, 학원 쫓아다니고 입시설명회 쫓아다니는 게 이기적으로 보일지 모르겠지만 엄연한 한국 사회 현실”이라며 “정부의 출제 오류로 인해 학부모들의 노력이 순식간에 무너지는 걸 아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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