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쏟아지는 수많은 e메일 중에 아무리 바빠도 흘려버리지 못하는 게 있다. ‘탈북자를 구해 달라’는 제목으로 북한인권시민연합(시민연합)이 보내는 메일이다. 대부분 북한에서 중국으로 탈출한 북녘 동포 몇 명을 데려오기 위해 얼마의 돈이 필요하다며 지원을 호소하는 내용이다. 메일을 읽을 때마다 탈북자들의 안타까운 사연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24일 시민연합이 보낸 메일의 주인공은 40대 부부와 10대 아들인 탈북 가족 3명이다. 가장 A 씨는 현지 활동가를 통해 시민연합에 구조를 요청했다.
평양에 살던 A 씨는 1976년 북한군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미군 2명을 살해한 도끼만행 사건 때 부모와 함께 혜산으로 추방됐다. 북한은 미국의 강경 대응에 놀라 체제 결속 차원에서 충성심이 의심스러운 평양시민을 대거 지방으로 쫓아냈다. A 씨는 의학대학을 졸업한 뒤 방역소에서 의사로 일했다. 하지만 추방 가족이어서 아내가 장사나 허드렛일을 해야 겨우 먹고살 정도로 형편이 어려웠다.
오랜 고민 끝에 A 씨 부부는 올 8월 쌍둥이 자녀를 데리고 북한을 탈출했다. 얼마 되지 않는 재산은 탈북 길을 안내한 밀수업자에게 넘겨야 했다. 중국에서 만난 조선족의 주선으로 한족 농가에 숨어 농사일을 도우며 지내던 중 딸이 결핵으로 쓰러졌다. 조선족에게 치료를 부탁했는데 그것이 더 큰 불행의 시작이었다. 조선족은 딸을 잡아놓고 한족에게 시집보내라는 말을 듣지 않으면 공안에 신고하겠다고 협박했다. 졸지에 딸을 뺏긴 A 씨는 눈물로 지내다 세 식구가 먼저 자유를 찾은 뒤 딸을 구하기로 하고 시민연합의 문을 두드렸다.
A 씨 가족에게 닥친 불행은 북한의 인권 탄압이 현재 진행형임을 확인시켜 주는 사례다. 어느 나라보다 북한 주민의 인권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데도 북한인권법조차 제정하지 못한 우리의 현실이 얼마나 부끄러운 것인지 절감한다. 여야가 어렵게 북한인권법안을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 상정했지만 유엔의 북한인권 결의 채택에 등을 떠밀린 것이어서 생색을 낼 일도 아니다.
게다가 새정치민주연합은 풍선에 매달아 북한으로 보내는 인쇄물과 선전물 등을 ‘반출 품목’으로 지정해 통일부 장관의 승인을 받도록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개정을 시도하고 있다. 민간단체들의 대북 전단 살포는 북한 주민에게 세습 독재의 실상을 알리고 인권에 눈을 뜨게 하기 위한 것이다. 새정치연합은 북한인권법이 탈북 지원단체들의 기획탈북을 조장하는 내용을 담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A 씨처럼 스스로의 힘으로 북한을 빠져나와 구조의 손길을 기다리는 사람들도 구해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북한인권법이라고 부를 수도 없을 것이다.
정부가 의욕적으로 ‘통일대박’을 추진 중이지만 우리 의도대로 진행된다 해도 긴 시간이 필요하다. 언제 올지 모르는 통일대박도 중요하지만 북한 주민이 지구상 최악의 인권지옥에서 벗어나게 하는 노력이 훨씬 시급하다. 정부는 유엔에 편승해서라도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물꼬를 터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도 북한의 인권 개선 없이 평화 통일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A 씨 가족 3명을 중국에서 제3국을 거쳐 한국으로 데려오려면 900만 원 정도가 필요하다.
시민연합은 올해만 38명의 탈북자를 구출했다. 700여 명의 따뜻한 손길이 생명을 구하는 일에 동참했다. A 씨는 호소한다. “살고 싶습니다. 아들을 살리고 딸을 살리고 싶습니다. 그토록 자유를 갈망했지만 사랑하는 딸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저희를 가족이라고, 아들이고 딸이라고 생각하고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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