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도 “찌라시” 선그은 문건… 검찰, 진위파악 제대로 할까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1일 03시 00분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 문건 파문]
‘靑인사, 언론사 고소’ 수사 전망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의원이던 시절 비서실장 역할을 했던 정윤회 씨가 현 정부의 비선 실세라는 의혹은 이제 검찰 수사로 진위가 가려지게 됐다. 수사 대상자들이 모두 박 대통령의 측근 인사인 데다 검찰이 납득할 만한 수사 결과를 내놓지 못하면 역풍을 맞을 수도 있어 검찰 수사가 정국을 뒤흔드는 ‘태풍의 눈’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검찰은 지난달 28일 ‘청와대의 정 씨 동향 보고서를 근거로 정 씨의 국정 개입이 사실로 확인됐다’고 보도한 세계일보 경영진과 기자 등을 청와대가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사건을 이르면 1일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부장 정수봉)에 배당할 것으로 알려졌다.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린 세계검사협회(IAP) 총회 참석차 출국했던 김진태 검찰총장은 지난달 29일 귀국 직후 자택에서 관련 내용을 보고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형사1부는 주말에도 출근해 고소장 내용과 과거 수사기록, 적용 법리를 종합적으로 검토했다.

형사1부는 서울중앙지검 내 주요 명예훼손 사건 전담 부서다. 4월 16일 세월호 침몰 당일 박 대통령의 7시간 행적 의혹을 보도한 가토 다쓰야(加藤達也)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의 명예훼손 사건, 새정치민주연합 박지원 의원이 제기한 ‘만만회’(이재만 박지만 정윤회 모임) 의혹, 정윤회 씨가 자신이 박 대통령의 남동생 지만 씨를 미행했다는 의혹을 보도한 시사저널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사건 등을 맡았다. 형사1부는 8월 초 정 씨를 한 차례 불러 조사했고, 두 차례에 걸쳐 각각 서면과 전화로 조사한 바 있다.

겉으로는 과거의 수사 이력을 강조하지만 처음부터 비선 라인의 국정 농단 의혹 전체를 수사 대상으로 하기보다 문건 유출 경로나 진위부터 파악하겠다는 검찰 지휘부의 의중이 반영된 조치라는 시각이 많다.

검찰 수사는 우선 문서의 유출 경로, 내용의 진위를 가리는 데 초점을 맞출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문서의 작성, 보고 및 수정 과정을 역추적한 뒤 유출된 문서와 대조해 작성자와 유출자를 압축해 나갈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문서의 유출 경로를 찾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올해 4월 청와대는 비위 행정관이 처벌을 받지 않고 원대 복귀한 것과 관련한 공직기강비서관실 보고서가 언론에 유출돼 자체 감찰을 했지만 유출 경로 추적에는 실패했다고 한다. 이번에 추가로 유출된 문서도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작성된 것이어서 유출 경로가 비슷할 가능성이 높다. 올해 1월 청와대에서 문서를 작성했고, 7개월 전에 청와대에서 이미 한 차례 자체 점검한 상황이라 결정적인 증거를 검찰이 뒤늦게 확보하기가 까다롭다는 지적도 나온다. 검찰 관계자는 “서두르지 않고, 원칙대로 수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청와대가 이미 “근거 없는 풍문을 모은 찌라시”라고 선을 그은 유출된 문서 내용의 진위를 확인하는 과정도 만만치 않다. 당사자의 청와대 출입기록이나 통화기록, 위치추적 등을 총동원해도 관련자가 협조하지 않을 경우 지난해 10월부터 문서가 작성되기 직전인 올해 1월까지 사건 관련자의 동선을 100% 복원하기가 쉽지 않다. 서로 주장이 엇갈리고 있어 검찰로서는 애매한 결론을 내면 부실수사 논란에 휩싸일 수 있다. 더구나 “수사 과정에서 권력 투쟁의 민낯이 드러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온다. 검찰의 의도와는 별개로 공직기강비서관실이 정 씨의 동향을 지속적으로 파악한 이유나 내부 알력 등이 노출될 수밖에 없기 때문.

당초 문건 유출 수사로 출발했다가 국회 국정조사와 특별검사를 거친 뒤에야 마무리된 김대중 정부 시절의 ‘옷 로비 사건’이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검찰 내부에선 “곤혹스러운 사건”이라는 말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변종국 기자 bjk@donga.com
#정윤회#국정개입#비선 실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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