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은 지난해 12월 ‘비서실장 교체설’이 찌라시(사설 정보지) 등을 통해 급속히 퍼지자 공직기강비서관실에 진원지를 파악해 보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문제가 된 ‘정윤회 동향’ 문건은 이 지시에 따라 진원지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나온 보고서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보고를 받은 김 실장은 “별다른 증거가 없다”며 묵살했다. 추가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김 실장이 독자적으로 판단한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배경이 있었는지 검찰 수사가 밝혀야 할 대목이다.
○ “김 실장의 지시에 따라 보고했으나 묵살”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과 ‘정윤회 동향’ 문건을 작성한 박관천 경정(전 공직기강비서관실 행정관)은 최근 검찰 조사에서 문건의 작성 과정을 상세히 진술한 것으로 7일 알려졌다. 이들 주장의 핵심은 ‘실장 교체설’이 왜 나오는지 확인해 보라는 김 실장의 지시에 따라 이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정 씨와 박근혜 대통령의 측근 보좌진 간 회동 첩보를 입수했다는 것이다.
내용이 심상치 않다고 판단한 이들은 문건을 작성해 김 실장에게 보고했지만 별다른 피드백을 받지 못했다. 김 실장은 최근 여권 관계자에게 “찌라시 수준의 정보라서 (내 선에서) 묵살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내용 자체가 황당해 추가 확인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풍문을 적은 동향 보고서였던 만큼 오히려 조사를 지시해 ‘허위 사실’임을 명확히 밝혔다면 ‘비선 논란’을 일찌감치 잠재울 수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김 실장이 허위 사실이라고 판단한 과정과 근거에 대해서도 궁금증을 낳는다.
○ “첩보에 대한 사실 확인은 없었다”
조 전 비서관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정윤회 동향’ 문건의 신빙성이 “60% 이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복수의 전직 공직기강비서관실 관계자들에 따르면 동향 보고서는 말 그대로 풍문 첩보를 담은 것으로 사실 확인을 거친 내용이 아니다. ‘정윤회 동향’ 문건도 마찬가지였다는 것이다. 더욱이 이른바 ‘문고리 권력’ 3인방 등 박 대통령의 측근 보좌진이 등장하는 첩보였던 만큼 공직기강비서관실이 김 실장의 지시 없이 먼저 사실 확인에 나서기도 어려웠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윤회 동향’ 문건의 제보자는 전직 검찰간부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관계자는 정 씨와 측근 보좌진 회동에 참석한 A 씨로부터 들었다며 문건 내용을 공직기강비서관실에 알려줬다는 것이다. 하지만 A 씨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나와 그 제보자, 박 경정이 삼자대면을 하면 모든 게 밝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확인되지 않은 보고서를 두고 조 전 비서관은 왜 신빙성을 높게 판단했는지, 회동 참석자가 직접 제보한 것처럼 주장했는지 의문이다.
○ “문체부 경질 감찰 보고서도 김 실장의 지시”
‘정윤회 동향’ 문건과 함께 비선 논란의 핵심 사안으로 떠오른 문화체육관광부 체육국장과 체육정책과장의 경질 인사도 의혹을 더하고 있다.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은 지난해 8월 박 대통령이 승마협회 조사를 담당한 국장과 과장의 교체를 직접 지시했다고 밝혔다. 승마 선수인 정 씨의 딸이 국가대표 선발 과정에서 승마협회와 마찰을 빚은 게 경질 인사의 배경이라는 주장이었다.
그러자 청와대는 공직기강비서관실의 감찰 결과 체육계의 비리 척결에 진척이 없는 이유가 ‘(문체부) 담당 공무원들의 소극적이고 안이한 대처 결과’라는 보고가 올라왔고, 이에 따라 인사 조치가 이뤄진 것이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이 감찰 보고서 작성도 김 실장이 직접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이 감찰 결과 경질 인사를 해야 할 정도의 비리가 발견되지도 않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윗선’의 지시에 맞춰 감찰 보고서가 작성됐다면 비선 의혹은 더 확산될 수밖에 없다. 향후 야당의 공세가 집중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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