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륙을 위해 활주로로 나가던 항공기를 되돌린 이른바 ‘땅콩 리턴’ 사건이 알려진 지 일주일이 지났다. 대한항공으로선 오너 3세인 조현아 전 부사장의 일탈로 벌어진 해프닝을 당사자의 검찰 소환과 사법처리 여부까지 고민해야 하는 위중한 사건으로 키운 꼴이 됐다.
대한항공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급격히 확산된 것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평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 하루 평균 300여 건에 불과했던 대한항공에 대한 언급은 사건이 불거진 이후 하루 최대 1만 건 가깝게 폭증했다.
위기관리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이 일파만파로 커진 것은 대한항공이 처음부터 사건의 본질을 잘못 짚은 데다 수습 과정마저 불투명하게 진행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일이 커진 가장 큰 원인은 사건 초기 외부가 아닌 내부의 시각으로 대응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대한항공은 8일 언론의 첫 보도가 나온 직후 공식적인 대응을 하지 않았다. 기업 내부의 일이지 외부에서 ‘감 놔라 배 놔라’ 할 일이 아니라는 판단에서였다.
하지만 여론이 점차 악화되자 당일 밤 한 장의 짧은 사과문을 내놨다. 대한항공의 논리는 ‘승객에게 불편을 끼쳐 사과한다’→‘그러나 대한항공 임원은 기내 서비스와 안전을 점검해야 한다’→‘직원들을 철저히 교육해 서비스 질을 높이겠다’로 이어졌다. 결국 조 전 부사장이 아닌 직원이 잘못했다는 것이다.
당시 국민들은 이 사건이 알려지자 지난해 발생한 ‘라면 상무’를 떠올렸다. 재벌가 3세의 ‘갑의 횡포’의 프레임으로 이 사건을 본 것이다. 하지만 대한항공은 ‘서비스의 질을 높이겠다’는 엉뚱한 이야기를 하면서 변명에 나선 셈이다.
대기업의 한 홍보담당 임원은 “대한항공이 이때 진정성을 갖고 피해를 본 직원들과 국민들에게 제대로 사과를 했다면 지금 같은 최악의 상황은 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②폐쇄적인 소통 구조
▼ 불투명한 의사결정… 직원들도 등돌려 ▼
대한항공의 폐쇄적 의사결정 구조도 이번 사태를 통해 확연히 드러났다. 대한항공 측은 여론이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자 9일 오후 조 전 부사장이 대한항공 보직에서 사퇴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다른 계열사의 보직은 유지되는 것이냐”는 질문에 홍보팀은 “모른다”로 일관했다. 회사의 입장을 대변하는 공식적인 창구인 홍보팀조차 이번 사태에 대한 회사의 의사결정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대외 소통을 책임진 임원 일부는 아예 외부와의 연락을 끊었다. 대한항공의 한 관계자는 “위에서 내려오는 지시를 단순히 전달하는 수준이다. 우리도 회사의 결정을 알 수 없어 답답하다”고 털어놨다.
대한항공 측이 보안을 이유로 직원들에게 함구령을 내리고 SNS에 대한 검열까지 한 정황이 드러났지만 허사였다. 대한항공의 전현직 직원들은 그동안 쌓여있던 오너 일가의 뒷이야기를 SNS를 통해 여과 없이 쏟아냈다.
우승호 인터브랜드 수석부장은 “과거에는 기업에 위기가 생기면 대응창구를 일원화하고 직원 입단속을 하는 식의 폐쇄적인 대응이 먹혔지만 최근의 미디어 환경에서는 통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③지나친 오너 눈치보기
▼ “잘못하면 찍힌다”… 위기매뉴얼 올 스톱 ▼
일각에서는 이번 일이 오너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문제로 통상적 위기대응 방식이 작동하기 힘들었다고 본다. 오너에게 ‘사과를 해야 한다’고 적극적으로 말하는 인물을 사실상 조직 내부에서 찾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위기관리 전문업체인 에이케이스의 유민영 대표는 “한국의 정부나 기업에서는 오너의 리더십이 여전히 ‘무조건 나를 따르라’는 수직적인 구조라 누군가가 오너에게 조언을 하면 소통이 아니라 찍힌다는 생각이 앞서 제대로 된 말을 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런 문제점을 인식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14일 임원들과의 회의에서 “오너와 경영진 등 상사에게도 ‘노(No)’라고 얘기할 수 있는 조직문화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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