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폭력 집회는 집회의 자유로 보장하지 않는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18일 03시 00분


[헌법재판소와 함께 하는 대한민국 헌법 이야기]헌법 제21조 제1항 모든 국민은 …집회…의 자유를 가진다

국가는 집회 시위의 자유 적극 보호해야 하지만 폭력 시위는 예외다. 사진은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대의 폭력적인 모습. 동아일보DB
국가는 집회 시위의 자유 적극 보호해야 하지만 폭력 시위는 예외다. 사진은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대의 폭력적인 모습. 동아일보DB
김현귀 헌법재판연구원 책임연구관
김현귀 헌법재판연구원 책임연구관
몇 년 전 직장인 A 씨는 퇴근 후 서울 세종대로 일대 촛불집회에 참가하였다가 오후 10시경 체포되었다. 당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제10조 등은 야간의 옥외집회를 금지했고, 이를 위반한 사람을 처벌했다. 담당 재판부는 집시법 조항에 위헌 소지가 있다며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제기했다. 헌법재판소는 ‘해가 진 후부터 뜨기 전’까지의 야간이라는 광범위한 시간대에 옥외 집회를 전면 금지하는 것은 직장인 학생 등의 집회 참여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기 때문에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다만, 심야 시간에는 시위를 금지할 필요가 있다며 자정 이후 시위는 금지하도록 했다.

집회는 사람들이 공동으로 의견을 형성하고 표현하기 위한 일시적인 모임이다. 도로를 행진하거나 구호를 외치는 시위도 집회의 한 유형이다. 이를 통해 사람들은 타인과 접촉하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며, 공동체 의사결정에도 참여한다. 신문이나 방송 등 언론매체에 접근하기 어려운 소수자에게는 집회나 시위가 자신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하고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가 세계사에 유례없이 짧은 시간에 민주주의를 정착시킬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 집회와 시위의 자유가 있다.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중요한 시점마다 학생 시민들이 뜻을 같이하여 집단으로 항의하고 정치적 의사를 표현했다.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은 소수의 발언 기회를 보장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민주주의의 요체인 다수의 지배를 정당화하고, 우리 사회를 다양한 생각이나 의견이 공존하는 열린 사회로 만든다.

집회의 자유는 집회의 목적이나 시간, 장소, 방법 등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말한다. 집회에 참가하는 행위뿐 아니라 집회 장소로 이동하거나 종료 후 귀가하는 등 집회와 관련한 모든 행위를 보호한다. 그래서 국가가 특정한 목적의 집회에 참가하는 것을 막거나, 반대로 참가를 강요하거나, 질서 유지를 명분으로 내세우며 검문을 강화해 집회 장소로의 접근을 어렵게 만드는 것은 집회의 자유에 어긋난다.

여러 사람이 모이는 집회는 그 자체로 개인이나 공공에 해를 줄 수 있다. 집회 소음에 교통 방해, 때로는 인근 상인들의 영업에 지장까지 초래한다. 그러나 그것은 민주주의의 일상적인 모습이고,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한 비용이다.

국가는 집회 시위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부당한 방해를 해서는 안 됨은 물론이고 나아가 이를 적극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다. 집시법 제1조는 집회와 시위를 최대한 보장하고 위법한 시위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게 목적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러므로 집회 현장에서 경찰의 임무는 집회가 안전하고 원만하게 끝날 수 있도록 집회를 보호하고 필요한 경우 질서를 유지하는 게 된다. 집회나 시위에 적극 개입하기보다는 질서 유지를 위해 교통 통제를 하거나 다른 집회와의 충돌을 예방하고 막는 것에 머물러야 한다.

경찰이 이 역할을 넘어 오히려 집회를 위축시키고 방해한다면 위법한 공무집행이 될 수 있다. 많은 사람이 집회에 참석할 것이 예상되거나 집회 장소가 교통이 혼잡한 도심이라는 이유로 경찰이 일반인의 통행을 불편하게 하는 차단 벽을 설치하거나 과잉 검문을 한다면 그것은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는 헌법적 취지에 반할 수 있다.

다만 국가안전보장이나 질서 유지 등을 위해 필요하다면 집회의 자유도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다. 심야 시간대 옥외 집회나 시위, 국가 기능의 원활한 수행이나 외교 관계를 고려하여 국가기관이나 대사관 주변에서의 시위 등이다. 교통 소통을 위해 필요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심각한 피해를 주는 소음을 동반하는 집회나 시위 역시 제한될 수 있다.

폭력적인 집회와 시위는 애당초 집회의 자유로 보장되지 않는다. 이는 민주주의 사회의 정상적인 의사표현 방식이 아니라 자신의 의견을 집단 강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집시법 제5조는 이를 분명히 하여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해산된 정당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집회나 시위, 폭행·협박·손괴·방화 등 공공의 안녕질서에 직접적인 위협을 끼칠 것이 명백한 집회나 시위를 금지하고 있다.

법률이 제한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옥외 집회는 관할 경찰서에 48시간 이내에 신고만 하면 누구나 할 수 있다. 경찰은 집회의 목적이나 성격을 고려해 허가 여부를 결정해서는 안 된다. 이는 헌법재판소가 집회 신고의 진위나 선후 등을 따지지도 않고 집회 신고가 동시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집회를 모두 금지하는 것은 신고제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판단한 바 있다.

김현귀 헌법재판연구원 책임연구관
#촛불집회#집회 시위의 자유#폭력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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