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상장에 앞서 삼성카드가 제일모직 지분 5.0%를 구주매출 방식으로 전량 매각하면서 삼성그룹의 대표적 순환출자 구조인 ‘제일모직→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제일모직’의 연결고리가 16년 만에 끊어지게 됐다. 이로써 지난해 말까지 30개가 넘던 삼성의 순환출자 고리는 10개로 줄었다.
재계에서는 삼성이 3세 승계를 앞두고 금융사와 비금융사 간 남은 고리를 최대한 끊고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을 중심으로 한 수직계열 구조를 강화해 나갈 것으로 보고 있다.
○ 얽히고설킨 순환출자 해소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2012년 말 정치권에서 경제민주화 바람이 불자 계열사들 간 복잡하게 얽혀 있던 순환출자 고리를 최대한 정리하라고 주문했다.
삼성 고위 관계자는 “당시 국회에서 신규 순환출자 금지에 대한 법안이 발의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이 회장이 자녀들에게는 순환출자 구조에 대한 부담감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내비쳤다”며 “3세 승계를 앞두고 지난해 말부터 이어져 온 사업구조 재편의 가장 큰 원칙 중 하나가 순환출자 고리를 최대한 끊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12월 삼성물산과 삼성전기가 각각 삼성카드 지분 2.5%와 3.8%를 삼성생명에 매각한 것이 시작이었다. 비금융 계열사들이 갖고 있던 금융사 지분을 사실상의 금융지주 역할을 하고 있는 삼성생명에 넘기면서 6개의 순환출자 고리가 연쇄적으로 사라졌다.
올해 6월에는 삼성카드가 제일모직 지분 4.7%를 삼성전자에, 삼성생명이 삼성물산 지분 4.7%를 삼성화재에 각각 넘겼다. 이어 7월 삼성SDI가 제일모직 소재 부문을 흡수합병하면서 제일모직에서 에버랜드로 이어지는 출자 고리가 끊겨 전체 고리 수는 14개로 줄었다.
전문가들은 삼성SDI가 남은 제일모직 지분 4.3%를 추가로 매각하고, 삼성물산과 삼성전기도 각각 갖고 있는 제일모직 지분을 매각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러면 삼성물산을 중심으로 한 삼성물산→삼성전자→삼성SDI→삼성물산 고리만 남게 된다.
▼ 제일모직 → 삼성생명 → 삼성전자로 단순화 ▼
○ 삼성생명→삼성전자가 골치
순환출자 고리가 해소되고 나면 삼성은 제일모직→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구조를 갖게 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3.24%의 지분을 갖고 있는 제일모직의 최대 주주이기 때문에 자연스레 삼성생명을 통한 삼성전자 지배가 가능하다.
삼성생명이 갖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 7.2%를 정리하는 것은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삼성 고위 관계자는 “순환출자를 최대한 정리하는 게 목표이긴 하지만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을 정리하려면 너무 큰돈이 필요하다”며 “당분간은 이 구조에 손을 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삼성도 그동안 이어져 온 금산분리에 대한 압박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이 부회장은 삼성생명과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꾸준히 지분을 늘리고, 우호 지분을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이 최근 삼성생명 지분 0.1%를 매입하고, 삼성전자가 2조 원을 들여 자사주를 사들인 것이 그 신호탄이다.
일각에선 삼성그룹이 앞으로 삼성전자를 사업부문과 지주부문 회사로 인적 분할한 뒤 몇 년 후에 제일모직과 삼성전자 지주부문 회사를 합병해 지주회사로 전환할 가능성도 제기한다. 이에 대해 삼성 관계자는 “지주사 전환은 오랫동안 검토해 봤지만 자금이 10조 원 이상 필요하기 때문에 자칫 경영권 방어가 어려워질 수 있다”며 “당장은 어렵고 장기적으로 고민해볼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 상장 첫날 거래대금 신기록
제일모직은 상장 첫날 주가가 공모가의 2배 이상으로 급등하며 증시에 화려하게 입성했다. 제일모직은 공모가(5만3000원)의 2배인 10만6000원에 첫 거래를 시작했다. 장 초반 주가가 급락하면서 첫날 하한가 가까이 떨어진 삼성SDS의 전철을 밟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지만, 연기금을 필두로 한 기관투자가들이 매수에 나서면서 시초가보다 6.6% 오른 11만3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시가총액은 15조2550억 원으로 단숨에 시가총액 순위 14위에 올랐다. 거래도 폭주했다. 제일모직의 이날 거래대금은 1조3651억 원으로 유가증권시장 전체 거래대금의 26%를 차지했다. 지난달 삼성SDS(1조3476억 원)를 넘어 상장 첫날 거래대금 기록을 갈아 치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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