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커버스토리]“돼지고기도 집까지 배달”… 주부 장바구니 가벼워져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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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왕국 대한민국

맞벌이 주부 안지혜 씨(32)는 장을 보러 마트에 가지 않은 지 두 달째다. 생수나 세제, 기저귀 등 생필품은 물론이고 두부 콩나물 같은 식재료도 모두 ‘온라인 장보기’ 서비스로 주문하기 때문이다. 안 씨는 “온라인에서 팔지 않는 술 종류를 제외한 대부분의 물건을 온라인으로 주문한다”며 “마트에 직접 가는 것은 1년에 다섯 번 정도”라고 말했다.

주부들은 이제 공산품뿐만 아니라 고기 채소 등 신선식품까지 온라인몰에서 주문해 택배를 통해 배달받는다. 실제로 돼지고기는 올해(1∼11월) 이마트 온라인몰에서 가장 많이 팔린 상품 순위 3위에 올랐다. 포장기술과 당일배송 서비스의 발달에 힘입은 것이다.

이마트 온라인몰 베스트셀러 1위는 생수가 차지했다. 주부들이 직접 마트에 가서 사오기엔 부피와 무게가 부담되기 때문이며, 그만큼 우리나라 사람들이 수돗물 대신 생수를 많이 마신다는 뜻이다. 아이들이 간식으로 많이 먹는 라면(2위)과 우유(4위), 스낵(5위)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이렇듯 일상생활에 깊이 파고든 온라인쇼핑과 함께 이뤄진 택배의 발달은 주부들의 장보는 습관을 비롯한 우리 삶의 여러 모습을 바꿔놓고 있다.

택배상자에 밀린 엄마의 장바구니

특히 최근 몇 년 사이 유통업체들이 배송서비스를 강화하면서 주부들의 장바구니가 집에서 잠을 자는 경우가 늘기 시작했다.

이런 변화를 뒷받침한 것은 유통업체들의 물류센터 확대와 포장기술의 발전이다. 이마트는 800억 원을 투자해 올해 경기 용인에 ‘보정센터’란 전용 물류센터를 세웠다. 이곳에서는 작업장 온도를 영상 8도 이하로 유지하며 배송 전까지 채소나 과일, 생선과 육류 등의 신선도를 관리한다. 이마트를 비롯한 유통업체들은 또 최근 몇 년 동안 물류센터 확장과 물류망 개선을 통해 당일배송 비중을 50%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포장기법도 꾸준히 진화하고 있다. 진공포장은 이제 ‘고전’에 속한다. 오픈마켓 11번가는 충격에 약한 달걀 배송을 위해 ‘에그박스’를 만들었다. 스티로폼에 달걀 크기로 동그랗게 홈을 파서 제작한 이 박스는 뚜껑을 덮었을 때 계란을 하나하나 잡아줘 외부 충격이 가해졌을 때 파손되는 것을 막아준다.

요즘에는 많은 업체가 수박을 배달할 때 완충기능이 약한 ‘뽁뽁이’ 대신 두꺼운 에어쿠션을 넣는다. 뽁뽁이보다 가격이 비싸지만 수박이 깨지지 않아 고객 불만이 줄었다. 또 산낙지나 전복 등 살아있는 해산물을 포장할 때는 ‘산소팩’을 쓴다. 비닐팩에 정제한 바닷물과 산소를 함께 넣으면 소비자가 해산물을 산 채로 받아볼 수 있다. 육류포장 땐 팩 안에 산소와 이산화탄소 질소를 혼합한 가스를 채워 미생물 생성을 억제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배경에는 제품에 대한 소비자의 신뢰도 상승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대부분의 소비자가 자신이 직접 보고 고르지 않아도 일정 품질 이상의 상품이 도착할 것이란 기대를 갖고 있다는 뜻이다.

‘초특가’ 생필품은 소셜커머스로

이런 믿음은 소비자들이 명절이나 연말연시에 선물을 고를 때도 매장을 방문하는 대신 PC나 스마트폰을 켜도록 하고 있다. 유통업계의 대목으로 꼽히는 명절, 크리스마스, 가정의 달(5월)을 비롯해 휴가철(7, 8월), 밸런타인데이(2월 14일), 화이트데이(3월 14일)에 팔린 인기 상품을 살펴보면 오프라인에서 일어나던 소비가 그대로 온라인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점이 잘 드러난다.

재미있는 사실은 유통채널별로 잘 팔리는 제품이 무척 다르다는 점이다. 요즘 소비자들은 대형마트 온라인몰에서는 당일배송이 가능한 신선식품을 주로 사고, 백화점이 운영하는 온라인몰에서는 백화점 매장에서 파는 것과 동일한 브랜드 제품을 주로 구매한다.

소셜커머스는 소비자들이 값싼 ‘특판’ 생필품을 대량으로 구입하는 창구 역할을 한다. 이런 점은 대형마트나 백화점몰의 경우 계절성(명절에는 선물세트, 여름 휴가철에는 물놀이용품이 많이 팔리는 것이 대표적)이 뚜렷하지만 소셜커머스에서는 시기와 관계없이 초특가 세일 생필품이 늘 판매 1위를 차지한다는 사실에서 잘 나타난다.

소셜커머스 사이트 쿠팡에서 지난 설에 가장 많이 팔린 제품은 ‘패션양말’이었다. 명절 선물용 양말이 아닌 알록달록한 무늬가 들어간 저렴한 상품(1켤레·990원)이었다. 주요 구매자는 화려한 패션양말을 즐겨 신는 10, 20대 고객이었다. 판매량 2, 3위는 반값 할인 상품인 ‘샴푸 린스세트’와 ‘칫솔 모음’이 차지했다. 이 같은 특성은 밸런타인데이와 화이트데이에도 그대로 나타났다. 밸런타인데이 때 쿠팡에서는 선물과 관계없는 ‘단백질 케어 헤어제품’이 가장 많이 팔렸다. 또 ‘압박 밴드’ ‘핫팩’ 등이 판매 상위 5위 안에 들었다.

해외 직구(직접 구매)를 통해 국제배송으로 들어오는 상품도 마찬가지다. 직구 시장에서는 국내 주요 쇼핑시즌과는 관계없이 의류나 건강식품, 패션잡화, 전자제품 등 해외 직구로 싸게 구매할 수 있는 몇몇 품목에 대한 소비가 집중적으로 일어난다. 실제로 해외 배송 대행업체 ‘몰테일’을 통해 가장 많이 배송되는 상품은 시기와 상관없이 ‘갭(GAP) 티셔츠’ ‘폴로 티셔츠’ ‘휘슬러 압력밥솥’ 등이다.

몰테일 관계자는 “해외 직구의 경우 국내 주요 쇼핑 시즌보다 해외 쇼핑 사이트의 세일 기간과 품목에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며 “의류나 가공식품, 패션잡화 등이 1년 내내 배송물량 가운데 상위 10위 안쪽을 차지한다”고 말했다.

“고객 마음잡아라” 배송 서비스 전쟁

온라인 쇼핑이 일상생활에 깊이 파고들면서 포장기법도 꾸준히 진화하고 있다. 오픈마켓 11번가는 충격에 약한 달걀을 배송할 때 달걀
 크기로 동그랗게 홈을 파서 만든 스티로폼 소재의 ‘에그박스’(왼쪽 사진)를 사용한다. 수박을 배달할 때는 사방을 ‘에어쿠션’으로
 감싸 파손을 막는다. 11번가 제공
온라인 쇼핑이 일상생활에 깊이 파고들면서 포장기법도 꾸준히 진화하고 있다. 오픈마켓 11번가는 충격에 약한 달걀을 배송할 때 달걀 크기로 동그랗게 홈을 파서 만든 스티로폼 소재의 ‘에그박스’(왼쪽 사진)를 사용한다. 수박을 배달할 때는 사방을 ‘에어쿠션’으로 감싸 파손을 막는다. 11번가 제공
해외 브랜드 운동화의 병행 수입 업체를 운영하는 백은주 씨(40·여)는 올해 1월 사무실이 있는 대구에서 서울 여의도까지 직접 운동화 한 켤레를 배달했다. 399만 원짜리 한정판 나이키 운동화를 구매한 고객을 만나기 위해 차로 꼬박 4시간 30분을 달렸다. 백 씨는 “전 세계에 180켤레밖에 없는 귀한 물건이기 때문에 진품 인증서와 함께 포장해 직접 전달했다”고 말했다.

백 씨의 사례처럼 날로 커지는 이커머스 시장에서 고객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배송 서비스 전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대형 업체들은 자체 물류센터를 짓고 소규모 업체들은 ‘프리미엄 서비스’를 내세워 고객에게 별도로 상품을 배달하고 관련 설명을 제공하는 서비스를 한다.

오픈마켓 옥션과 G마켓을 운영하는 이베이코리아는 이달 초 경기 용인에 온라인마켓 최대 규모인 1만9800m²(약 6000평) 크기의 물류센터를 새로 지었다. 여러 판매자의 물건을 함께 보관하는 물류센터를 지으면 다양한 판매자의 물건을 택배상자 1개에 한꺼번에 담아 고객에게 배송할 수 있다. 물류센터를 짓기 전에는 판매자별로 물건을 따로 발송할 수밖에 없었다. 옥션 관계자는 “여러 판매자의 상품을 주문해도 고객이 배송비를 한 번만 지불하면 된다”고 말했다.

한편 택배 서비스의 발달은 해외 직구뿐만 아니라 개인 간의 국제 거래도 활성화시키고 있다. 요즘에는 어떤 해외 사이트에서 물건을 사든지 실시간으로 배송 상황과 상품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개인 국제거래의 경우 이베이 같은 사이트에서 중고품을 거래하는 것은 물론이고 애완용 새우와 수공예품 등 다양한 품목의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애완용 새우의 경우 한중일 3국 동호인 사이에서 경매와 국제배송이 활발하다.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택배#생필품#온라인 장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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