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롱 경제장관 “이념보다 먹고사는게 중요”… 올랑드 대선공약도 뒤집어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1일 03시 00분


[2015 뜨는 정치지도자들]<1>佛 사회주의 새 얼굴 마크롱 경제장관



《 정치가 답답할수록, 경제가 어려울수록 혜성처럼 나타나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지도자를 갈구합니다. 올 한 해 뜨는 지구촌 지도자는 누구일까요. 미국 유럽 일본 중국 등 글로벌 무대에서 주목 받을 차세대 리더를 선정해 그들의 정치철학과 개인적 면모를 알아보는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주요국 국민들이 원하는 지도자들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우리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공감을 불러일으킵니다.》  
“이념이 중요한 게 아니라 먹고사는 문제가 중요합니다.”

새해 프랑스에서 가장 주목받는 정치인은 단연 에마뉘엘 마크롱 경제장관(38·사진)이다. 일간 르파리지앵 여론조사에서 그는 ‘2014년 떠오른 정치인’ 1위로 꼽혔다. 마흔 살도 안 된 애송이(?) 장관에게 해외 언론도 주목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마크롱 장관은 이념에 얽매이지 않는 현실주의 행보를 하고 있다”며 “프랑스 사회주의의 새 얼굴”이라고 치켜세웠다.

그는 현재 집권 여당인 좌파 사회당 정부에서 우파 사르코지 정부 못지않은 친기업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가 국회에 제출한 107개 경제개혁안(‘마크롱 법안’)에는 그동안 사회당 정부가 ‘신성불가침의 영역’이라며 고수해 왔던 각종 규제를 철폐하는 파격적인 내용으로 가득하다.

1906년부터 금지하고 있는 일요일 가게 영업을 허용하는 것에서부터 법조인 약사 등 고소득 전문직의 독점적 지위를 해체하고 노사 분쟁을 3개월 안에 끝내도록 하는 노동 유연성 확대 법안까지 담겼다. 경쟁이 제한적이었던 버스 노선에도 경쟁을 도입한다. 심지어 유럽에서 가장 짧은 프랑스의 법정 주 35시간 근무시간까지 직원들의 합의를 전제로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주 35시간 근로제’는 15년 전인 2000년 사회당 정부가 도입한 정책이다. 자신들이 도입한 정책을 폐기하는 것까지 제안할 정도로 그의 행보는 그야말로 광폭(廣幅)이다.

그는 자신을 임명한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내건 대선 공약까지 과감히 철회한 사람이다. 2012년 올랑드 대통령의 수석경제보좌관으로 임명되자마자 “상위 1%에게 75%의 고(高)세율을 부과하겠다”는 대선 공약을 철회하고 고용을 늘리는 기업들에 400억 유로의 세금을 감면해주는 ‘책임 협약’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그가 과감한 규제 철폐에 집중하는 이유는 규제에 따른 피해자가 중소기업, 서민, 청년들이라는 생각 때문. 그는 “대기업들은 수많은 변호사를 고용할 수 있기 때문에 프랑스의 복잡한 규제에도 잘 적응할 수 있다. 반면 새로 시장에 진입하려는 중소기업, 청년들에겐 치명적인 제약”이라고 말한다.

그의 거침없는 행보에 집권 여당 안에서조차 “좌파의 가치를 버리고 있다”는 비난에서부터 “금융 권력의 시녀” “양의 탈을 쓴 늑대” “출세에 눈먼 탐욕주의자”라는 원색적인 막말을 쏟아 붓고 있다. 하지만 마크롱 장관은 취임 후 각종 언론 등을 통해 이렇게 말할 정도로 단호한 입장이다.

“프랑스는 경직된 노동시장 때문에 정규직이 아닌 계약직만 채용되고 있다. 내가 좌파 정책을 버린다고 말하지만 소수만 혜택을 보는 독점을 해체하고 누구든지 노동시장에 자유롭고 평등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좌파적 가치라고 생각한다. 현대의 사회주의자는 노동자나 실업자만 보호하지 않고,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기업과 취업을 바라는 청년들도 보호해야 한다. 국민에게 권리를 무한하게 연장해 줄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는 사회당 노선이야말로 ‘오도(誤導)된 마르크시즘’이다.”

그러면서 자신의 정책이 향하는 목적이야말로 ‘진보’라고 강조한다. “내가 하는 개혁은 좌우의 문제가 아니라 프랑스 경제가 다시 돌아가고 프랑스 스스로 자신들의 조국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진보(Progr‘es)’를 위한 것”이라며 “이를 위해 매 순간 투쟁할 각오가 되어 있다”고 한다. 새해 국회에서 ‘마크롱 법안’ 통과를 놓고 한바탕 전쟁을 치러야 하는 상황에서 그가 최근 르몽드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새해를 맞는 각오’는 이렇다.

“개혁은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죽음의 계곡’과 같다. 마지막 순간까지 언제 이 계곡을 빠져나갈지 알 수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최악의 선택은 더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것이다. 머물러 있으면 떨어져 죽고 말기 때문이다.”

이런 그를 버티게 하는 최대 버팀목은 국민의 지지이다. 프랑스 국민들은 그를 실업률이 5년 넘게 10%가 넘고 청년실업률이 25%에 이르며 파업으로 번번이 나라가 멈추는 ‘유럽의 병자(病者)’로 각인된 프랑스를 구원할 마지막 구원투수, 마지막 희망으로 인식하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현재 올랑드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 국민의 90%가 부정적인 데 반해 그가 추진하고 있는 개혁법안에 대한 지지율은 60%가 넘는다. 마크롱의 인기는 과감하게 인재를 등용하고 각종 비난 여론에도 엄호해주는 올랑드 대통령에 대한 지지로 이어지고 있다.

국립행정학교(ENA)를 졸업한 마크롱 장관은 프랑스 재무부의 금융조사관으로 일하다가 2009년부터 4년간 글로벌 투자은행인 로스차일드에서 일했다. ‘사상적 멘토’는 좌우를 넘나들며 전직 대통령의 자문 역할을 해 온 경제학자 자크 아탈리로 알려져 있다. 올랑드 대통령을 처음 만난 것도 2007년 아탈리 교수의 집에서 열린 파티였다고 한다.

사생활도 거침이 없다. 고교 시절인 17세에 만난 무려 스무 살 연상인 자신의 프랑스어 선생님과 2007년 결혼해 세 자녀를 두고 있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정치지도자#사회주의#마크롱 경제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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