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뱃값 인상으로 수요 감소를 우려한 담배 회사들이 소매점 마진율을 낮추고 가격 인상 시기를 늦추는 등 ‘꼼수’를 부리고 있다.
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국내 담배 시장 1위 사업자인 KT&G는 지난해 말 소매점의 담배 판매 마진율을 10%에서 제품 종류에 따라 최대 7.5%까지 낮췄다. 새해 들어 담뱃값이 올라 찾는 사람이 줄어들면 수익이 줄어들 것에 대비한 조치다.
이에 따라 저가 담배(4500원 미만)는 7.5%, 중가 담배(4500∼5000원 미만)는 9.5%로 각각 2.5%포인트, 0.5%포인트 낮아졌다. 고가 담배(5000원 이상)는 기존 마진율이 유지됐다.
국내 담배 시장 2위 사업자인 한국필립모리스도 지난해 말 소매점의 담배 판매 마진율을 기존 10%에서 제품에 따라 9.3∼9.4%로 낮췄다.
담배 회사들의 갑작스러운 마진율 인하 결정에 소매점들은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마진율이 낮아지면서 담배 한 갑을 팔았을 때 남는 몫이 최대 100원가량 줄었기 때문이다. 마진율이 가장 큰 폭으로 줄어든 KT&G의 저가 담배(현행 4000원) ‘디스’, ‘라일락’, ‘한라산’의 경우 마진율이 지난해 수준(10%)을 유지한다면 갑당 400원이 남지만 새 마진율(7.5%)을 적용하면 300원만 남게 된다.
서울 시내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남모 씨는 “담배 수요가 줄면 사정이 어려워지는 건 담배 회사나 우리나 마찬가지”라며 “담배 회사들은 마진율을 낮춰 소매점에 그 부담을 떠넘길 수 있지만 우리는 그럴 수도 없는 처지”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또 “그동안 담배를 많이 팔아도 실제 수익에는 별 도움이 안 될 정도로 마진이 낮았다”며 “담배 회사들이 ‘갑(甲)질’을 세게 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담배 회사들은 ‘불가피한 조정’이라고 해명했다. KT&G 관계자는 “최근 10년 동안 지속적으로 원가가 오르고 저가 담배의 적자가 이어졌음에도 소매점 공급가를 조정하지 않았던 점을 감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부 담배 회사들은 담뱃값 인상을 미루는 ‘꼼수’도 부리고 있다. 다국적 담배회사인 BAT와 JTI는 새해 들어서도 가격을 올리지 않고 있다. BAT ‘던힐’과 JTI ‘메비우스’는 여전히 1갑에 2700원이다. 업계에서는 사재기 수요가 아직 가격이 오르지 않은 담배들로 쏠릴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이들 회사는 본사와 가격 협의가 끝나지 않아 인상 가격을 신고하지 못했다고 밝히고 있다. 현행 담배사업법 시행령상 담배 회사들이 담뱃값을 올리기 위해서는 판매 6일 전까지 인상 가격을 정부에 신고해야 한다. 올해 1월 1일자로 담뱃값을 올리려면 지난해 12월 24일까지 기획재정부에 신고를 해야 하지만 두 회사는 1일까지 가격을 신고하지 않았다.
하지만 관련 업계에서는 경쟁 회사의 소비자를 끌어오기 위한 전략이라고 보고 있다.
담배업계 관계자는 “두 회사가 세금 인상분을 떠안기 때문에 팔수록 적자지만 장기적으로 시장점유율을 확대하기 위해 담뱃값 인상을 일부러 미룬 것 같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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