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직전 이승만 전 대통령(1875∼1965·사진)이 미국인 후원자들과 함께 무장투쟁을 추진한 증거가 발견됐다. 이 전 대통령은 외교독립론을 일관되게 주장했지만 일본의 패색이 짙어지면서 무장 독립운동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 관련 해외 서지자료를 수집하는 윤형원 아트뱅크 대표는 “세브란스 병원 창립자이자 고종의 어의였던 올리버 애비슨 박사(1860∼1956)가 1944년 1월 한국기독친우회(the Christian Friends of Korea) 회원들에게 보낸 영문 편지를 최근 입수했다”고 4일 밝혔다.
한국기독친우회는 이 전 대통령의 요청으로 애비슨 박사가 설립한 미국의 한국 독립 후원단체. 애비슨은 캐나다 출신 선교사 겸 의사로 이 전 대통령과 절친한 친구 사이였다. 청년 이승만이 개화 지식인으로 거듭날 때 애비슨 박사가 그의 상투를 손수 잘라준 일이 유명하다.
애비슨 박사의 편지는 B5 용지 2배 크기의 종이에 영문으로 타이핑을 하고 끝에 자필서명을 남겼다. 그는 편지에서 “우리가 추구해온 한국의 독립이 절반가량 이뤄졌지만 좀더 노력해야 할 사항이 남아 있다”고 밝혔다. 이어 “한국의 즉각적인 독립과 더불어 한국이 유엔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기를 희망한다”며 “이는 한국인 군대가 조직돼 중국과 만주, 한국, 일본 본토에서 연합군과 함께 자유를 위해 싸울 때 가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쟁이 끝난 뒤 한국이 즉각적인 독립을 쟁취하려면 승전국으로서 국제적 위상을 갖출 필요가 있다고 본 것이다.
애비슨 박사는 편지 말미에 “과업을 수행하는 데 많은 비용이 든다는 점을 감안해 성의껏 기부해 달라”며 회원들에게 군자금 모집을 요청했다. 학계에서는 애비슨의 편지가 이 전 대통령과 긴밀한 협의를 거쳐 나온 것으로 보고 있다.
애비슨이 편지를 쓸 무렵 이 전 대통령은 미군 전략정보처(OSS)와 함께 한인 청년들의 후방 침투작전을 논의하고 있었다. 이 전 대통령은 무장 독립운동이 비현실적이라고 비판하기도 했지만, 일본의 패전이 가시화되자 새로운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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