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후지사와 슈코(藤澤秀幸) 9단은 술과 도박을 좋아한 바둑계의 기인이었다. 화려하면서 두터운 바둑으로 한 세대를 풍미한 인물이다. 조훈현 9단의 일본 유학시절에는 바둑 사형이었고 조훈현이 귀국한 뒤로는 술 한 병만 들고 그를 찾아 한국에 오기도 했다.
‘영원한 기세이(棋聖)’로 불리는 후지사와. 그는 “바둑은 1년에 4판만 이기면 된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이 말은 기세이 도전 7번기 승부에서 4번만 승리해 우승을 차지하면 된다는 뜻인데 1977년 당시 상금규모는 일본 최대(1700만 엔)였다. 52세 후지사와는 그해 간사이(關西)기원 창시자인 하시모토 우타로(橋本宇太郞)를 누르고 초대 기세이 우승자가 됐다. 이후 ‘대마 킬러’ 가토 마사오(加藤正夫), ‘컴퓨터’ 이시다 요시오(石田芳夫), ‘미학’ 오다케 히데오(大竹英雄) 그리고 ‘이중 허리’ 린하이펑(林海峰) 등 당대의 내로라하는 젊은 도전자를 차례로 물리쳤다. 그는 57세까지 이 대회를 6연패했다.
조한승 9단(33)은 국내 유일의 도전기인 국수전에서 후지사와를 꿈꾸고 있다. 그는 2012년 최철한 9단에게 도전해 국수 자리를 차지했고 이듬해엔 최철한의 도전을 뿌리치며 2연패했다. 이어 지난해에는 이세돌 9단마저 물리쳐 3연패를 이뤄냈다. 올해 그는 4연패를 노린다. 국수전 58기 역사상 4연패 이상을 이룬 기사는 조남철 김인 조훈현 이창호 네 명뿐. 조한승 9단의 유연한 바둑은 이 국수전에서 힘을 발휘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상대는 벅차다. 14개월째 랭킹 1위를 고수하는 박정환 9단(22)인데 그는 국수전 도전자결정전에서 삼성화재배 우승으로 기세를 올린 김지석 9단을 잠재웠다. 박정환으로서도 국수(國手)는 아직 올라보지 못한 고지. 게다가 국내 최강자이긴 해도 1인자라 불리기엔 2% 부족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따라서 박정환 시대를 열자면 국수 자리에 반드시 올라야 한다.
6일 전남 순천시 상사면의 승주 컨트리클럽에서 열린 국수전 도전 1국. 돌을 가린 결과 흑을 쥔 조한승은 초반부터 적극적으로 나섰으나 유연하지는 못했다. 결국 조한승이 150수만에 돌을 거뒀다. 박정환의 선승. 윤준상 9단은 “막판 흑에게도 기회가 있었지만 박정환의 마무리가 돋보이는 명국이었다”고 평가했다.
도전 2, 3, 4, 5국은 9, 12, 14, 16일 한국기원에서 열린다. 먼저 3승을 거두면 우승하는데 우승 상금은 4500만 원. 국수전은 기아자동차가 후원하고 있다.
한편 도전 1국 부대행사로는 다면기와 공개해설(지원 포스코·포스코켐텍)이 마련됐다. 여자 바둑리그 포스코켐텍의 이영신 감독과 선수인 조혜연 김은선 김채영 프로가 지역 주민 등 20명과 지도 다면기를 가졌다. 김성룡 9단은 공개해설에서 특유의 입담으로 바둑 팬을 즐겁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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