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지하도의 차가운 바닥에서 잠을 청한 노숙인을 매일 아침 찾아와 몸을 흔드는 사람이 있었다.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눈을 뜨면 덩치 큰 경찰이 시야에 들어왔다. 2000년 7월부터 서울 남대문경찰서 서울역파출소에 근무해온 장준기 경위(53)였다. 그가 지하도에서 청소 아주머니를 도와 노숙인을 깨우기 시작했을 때,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무작정 단속하고 계도하는 게 능사는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친해지면 미안해서라도 사고를 못 칠 것 같았다. 장 경위는 노숙인과 소통하자는 생각에 늘 먼저 말을 걸고 주변 쓰레기를 치워줬다. 애로사항을 들어주면서 해결법이 있으면 안내해주기도 했다. 그렇게 2년쯤 지났을까, 노숙인들이 조금씩 마음을 열고 그를 ‘큰형님’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장 경위는 서울역에서 돌봐온 ‘동생들’의 곁을 좀처럼 떠나지 못했다. 2003년에 다른 파출소로 발령받아 근무할 때도 서울역에 와서 그들을 돌봤고 1년 만에 다시 서울역파출소로 돌아왔다. 그렇게 총 15년을 근무했다. 8년 전쯤부터는 매주 금요일마다 노숙인에게 무료로 이발을 해주고 있다. 지금까지 그를 거쳐 간 노숙인은 약 1500명. 이 중 일부는 세상을 떠나기도 했다. 특히 노숙인 김모 씨(2013년 사망·당시 46세)와의 인연은 잊을 수 없다. 알코올의존증이 심해 정신병원에 입원한 경력이 있었다. 장 경위는 그를 목욕시켜 주면서 각별한 추억을 쌓았다.
김 씨는 막걸리를 마시다 다른 노숙인을 폭행했고, 구속돼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출소를 2, 3개월 앞둔 2013년 그는 폐암으로 형 집행정지를 받아 병원에 입원해 산소호흡기를 써야 했다. 보고 싶어서 찾아가자 김 씨는 “물 한 모금 시원하게 마시고 싶다”고 했다. 김 씨는 “마지막으로 형님이 사주는 물을 마시고 싶다”고 했다. 장 경위는 얼른 매점에서 물을 사서 건넸다. 김 씨는 기쁜 표정으로 벌컥벌컥 마셨고, 다음 날 숨졌다.
노숙인들은 저마다 아픈 사연을 갖고 있었다. 노숙인 김모 씨는 50대가 되도록 자신의 호적(현 가족관계등록부)이 있는지조차 모르고 길바닥을 전전하며 살아왔다. 7세 때 경남 마산에서 서울로 올라오면서 엄마를 잃어버린 뒤부터였다. 장 경위는 동사무소, 구청을 찾아다니며 백방으로 수소문해 호적을 만들어줬다. 김 씨는 그렇게 새로 생긴 ‘한양 김씨’의 시조가 됐다.
장 경위는 8일 정기 심사승진에서 경감으로 승진해 다음 달 서울역파출소를 떠나게 됐다. 15년간 곁을 지킨 노숙인들에겐 아직 작별 인사를 하지 못했다. 그는 “괜히 소문낼 필요는 없어서 말을 안 했는데, 임박해서 고맙다고, 감사하다고 인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