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개봉한 영화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미국의 전설적인 저격수 고(故) 크리스 카일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는 해군특전단(네이비실)에 복무하는 동안 이라크전에 참전해 미 국방부 공식 확인 기록으로만 160명을 사살하며 아군에겐 ‘레전드(전설)’로 통했지만 적군에겐 ‘라마디의 악마(The Devil of Ramadi)’로 불렸다. 카일의 최장 저격 기록은 2008년 세운 1.92km. 강인한 정신력과 집중력은 저격수의 필수 요건으로 불리지만, 전문가들은 물리학 지식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 1초 뒤 4.9m 아래로 곤두박질
화약의 폭발력으로 튕겨 나온 탄환이 총구를 떠나는 순간, 탄환은 지구 중력 때문에 직선운동 대신 포물선운동을 한다. 초속 800∼900m로 쏜살같이 튕겨 나가는 탄환은 1초만 지나도 4.9m 아래로 곤두박질치고, 약 2초 뒤 2km 이상 멀리 있는 표적에 도달했을 때에는 30m 가까이 떨어진다.
김상욱 부산대 물리교육과 교수는 “표적이 멀리 있을수록 총구를 들어 오조준해야 한다”며 “표적까지의 정확한 거리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영화에서 카일은 표적까지 레이저를 쏜 뒤 돌아오는 시간을 이용해 저격 거리를 정확히 측정하는 장면이 나온다.
한편 총알은 음속보다 2배 이상 빠르기 때문에 총을 맞고 난 뒤 총성이 들리는 경우가 있다. 6·25전쟁을 소재로 다룬 영화 ‘고지전’에는 이런 이유로 ‘2초’라는 별명이 붙은 북한 저격수가 등장한다. 총을 맞은 뒤 2초 뒤에 총성이 들린다는 뜻이다.
당시 6·25전쟁에 사용된 러시아제 소총의 탄환은 초속 800m 정도로 영화에서처럼 총알이 총성보다 2초 먼저 도착하려면 표적까지 1.2km 정도 거리를 두고 방아쇠를 당겨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 정도면 한강을 가로지르는 영동대교(1.065km)보다 긴 거리다. 카일의 경우 1.92km 떨어진 표적에 총알이 도착했을 때 총성은 약 3초 뒤에 울린다.
○ 남실바람에 표적 70cm 벗어나
바람도 무시하지 못할 변수다. 피부가 가까스로 느낄 수 있는 약한 바람인 초속 1.6m의 남실바람만 불어도 1km를 날아간 탄환은 표적에서 70cm 이상 벗어난다. 이 때문에 저격수는 표적 근처에서 휘날리는 깃발과 깃대 사이의 각도를 이용해 바람의 세기를 계산해야 한다. 나뭇가지의 흔들림, 아지랑이의 방향 등도 바람의 세기를 가늠하는 지표가 된다. 가령 바람이 없으면 아지랑이가 수직으로 올라가지만, 바람이 강해질수록 바람의 방향을 따라 아지랑이가 기울고, 초속 4m 이상 산들바람이 불면 아지랑이가 거의 수평으로 움직인다.
이는 스포츠의 양궁도 마찬가지다. 활시위를 떠난 화살은 마치 물고기가 허공에서 헤엄치듯 구불구불하게 움직이며 과녁까지 날아간다. 손가락이 활시위를 당겼다 놓을 때 탄성이 생기면서 커다란 요동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바람까지 불면 70m 이상 떨어진 거리에서 지름 12.2m 10점 과녁을 맞히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이 때문에 양궁 선수들은 풍속과 풍향을 고려해 의도적으로 오조준을 한다.
○ 고도, 온도, 습도까지 계산해야 백발백중
고도 또한 저격의 성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변수다. 고도가 높아지면 공기 농도가 희박해 공기 밀도가 낮아지기 때문에 탄환이 더 멀리 날아간다. 해발 0m에서 영점을 잡은 총으로 해발 1.5km의 태백산 정상에서 1km 떨어진 표적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면 목표 지점에서 1m 정도 벗어난다.
대기 중 습도도 탄환의 궤적에 영향을 미친다. 습도가 높으면 탄환의 회전이 더디다. 저격수들은 실험과 경험에 의해 만들어진 공식을 이용해 고도, 습도, 온도를 계산한 뒤 방아쇠를 당기도록 훈련 받는다.
2km가 넘어가는 경우에는 지구의 자전도 변수가 될 수 있다. 과학교사들의 모임인 ‘신나는 과학을 만드는 사람들’의 이세연 교사(서울 명덕고)는 “탄환이 날아가는 동안 지구 자전의 영향으로 좌우로 휠 수 있다”면서 “이를 코리올리 효과(전향력)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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