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 하나하나를 고를 때에도 심사숙고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지난해 6·4 서울시장 선거에서 고배를 마신 뒤 여의도를 잠시 떠난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를 15일 서울 신문로 아산정책연구원에서 만났다. 7개월 만의 첫 언론 인터뷰였다.
정 전 대표는 “새해 들어 26년 국회의원 생활을 뒤돌아보고 반성의 시간을 갖고 있다”며 “처절한 자기 성찰의 시간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와신상담(臥薪嘗膽)’하고 있다는 뜻으로 들렸다.
그는 우선 자신에 대해 “겸손하지 못했다”고 진단했다. 서울시장 선거 패배에 대한 자성이냐고 묻자 “정치역정 전반에 대한 것”이라며 “2002년과 2012년 대통령 선거는 물론이고 서울시장 선거, 그리고 의정활동 내내 더 겸손하지 못했던 것 같다”고 했다.
의원직을 내놓았지만 그는 휴지기 동안 외국 방문을 자주 했다. 5개국을 다니며 주특기인 외교·안보 분야에 대한 식견을 벼리는 기회로 삼았다고 한다. 새해 벽두엔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일본 총리가 만든 세계평화연구소를 찾기도 했다.
그는 “국제사회에서 보면 ‘고립된 섬’인 대한민국의 생존전략을 찾기 위해서는 국내정치 잣대로 세상을 바라봐서는 안 된다”는 쓴소리를 했다. 이어 “과거 권위주의 시절 외국에 갔다가 한국에 돌아오면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요즘에도 그런 생각이 든다”는 말도 했다. 본인은 손사래를 치고 있지만 여의도 복귀 시점을 숙고하는 것으로 비쳤다.
언제 복귀할 것이냐고 묻자 정 전 대표는 “아직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다 한 것은 아니지만 (정치 활동을) 꼭 하는 게 내게 바람직한지, 나라 전체로서도 바람직한지 생각을 해보려고 한다”고만 말했다. 그러면서도 “길거리를 다니면 사람들이 반가워해요. 젊은 여성들도 와서 ‘우리 어머니가 팬이에요’라고 말해주기도 해요. 그러면 속으로 ‘당신은 내 팬 아닌가요’라고 해보기도 하지…”라며 너털웃음을 짓는다. 정치권에선 정 전 대표가 조심스럽게 활동을 재개했다는 얘기도 나돌고 있다.
그에게 박근혜 대통령은 숙명적 인연이다. 장충초등학교 동문의 끈 이외에는 서로 대척점에 서 있었다. 당 대표 시절 박 대통령에게 손을 내밀었지만 반응은 냉랭했다. 친박(친박근혜)은 ‘정몽준 카드’가 박 대통령을 잡기 위한 트로이의 목마라고 생각했다.
정 전 대표는 “대통령이 초등학교 동창인데 국회 오기 전에 테니스도 치고 식당도 같이 다니면서 친하게 지냈다. 대통령이 되기 전에 내가 좀 직설적으로 이야기하고 그랬는데 요즘은 그런 사람도 없는 것 같다”며 웃었다. 박 대통령의 신년사에 대한 평가를 묻자 “많은 사람의 지혜가 청와대로 잘 전달됐으면 한다”며 “대통령이 좀 더 개방적으로 할 수 없는지…”라고 아쉬워했다. 우회적으로 날을 세운 느낌이다.
이어 그는 “국민이 행복한 시대는 참 좋은 말인데 대통령 본인이 행복하면 국민들도 행복해질 것 같다”며 ‘뼈 있는’ 말도 했다.
인터뷰 말미에 정 전 대표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차기 대선 주자로) 유력하답니까”라고 물었다. 지난해 말부터 차기 대선 주자로 1위를 달리는 반 총장이 신경 쓰이는 모양이다. 두 사람은 외교 안보 전문가로 평가된다. 그러면서도 “정치는 순리(順理)대로 해야 한다”고 했다. 다소 ‘튀는’ 듯했던 자신의 지난 행보에 대한 반성일까, 정치 기반이 없는 반 총장에 대한 견제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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