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뇌물 판사’에 재판 맡긴 대법원 자정능력도 없나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21일 03시 00분


수원지방법원 최민호 판사가 사채업자에게서 수억 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현직 판사가 긴급 체포돼 사법처리된 것은 초유의 충격적인 일이다. 대법원은 작년 4월 최 판사의 금품수수 의혹이 불거진 뒤 세 차례나 조사하고도 비리를 밝혀내지 못한 채 검찰 소환 전날까지 재판을 맡겼다. 대법원은 “국민에게 깊은 사과 말씀을 드린다”면서도 직무배제 조치를 취하지 않은 데 대해선 “강제 수사권이 없어 검찰 수사 결과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라고 변명까지 했다. 사법부의 존립 근거가 되는 신뢰성이 땅에 떨어졌는데 대법원조차 비리 규명 의지도, 자정(自淨)능력도 없음을 드러낸 꼴이다.

최 판사는 ‘명동 사채왕(王)’으로 불리는 최모 씨(수감 중)에게서 5억6400만여 원을 받은 의혹이 불거져 수사를 받았다. 2008년 검사 시절 마약 혐의로 수사를 받던 최 씨를 알게 됐고 2009년 판사로 전직한 뒤 수사와 재판에 영향력을 행사해 주는 대가로 2억6800만 원을 받은 혐의다. 그 사채업자의 부탁을 받고 대학 동문이자 사법연수원 동기인 한 검사에게 마약사건 무마를 시도한 정황도 드러나 있다.

수원지법은 최 판사의 소명만 듣고 “뇌물 건은 근거 없는 의혹 제기”라고 발표했다. 검찰도 문제의 검사에 대해선 사실 확인서만 받고 조사를 마무리한 바 있다. 범죄 혐의자를 사적으로 만나는 일 자체가 법관윤리에 저촉되는데도 법원과 검찰이 ‘제 식구 감싸기’에 급급했던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

사채왕 최 씨는 평소 “판검사 검찰수사관 경찰관 수십 명을 관리하고 있다”고 주장해 왔다. 최 씨에게서 수천만 원을 받은 혐의로 검찰수사관 3명이 수사를 받고 있고 정기상납을 받은 경찰관들도 있다고 한다. 구린 냄새를 풍기는 ‘비리 카르텔’일수록 판검사 검찰수사관 경찰관과 커넥션을 만들어 보호받으려고 든다. 말로는 수없이 “신뢰 회복”을 외쳐온 ‘김진태 검찰’에 법조비리 카르텔의 전모를 밝혀낼 수사 의지가 있는지 국민이 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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