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19일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홀로코스트(유대인 학살) 기념관을 찾아 허리를 굽힌 채 헌화하는 사진이 외신을 타고 전 세계에 유포됐다. 이 사진은 45년 전인 1970년 12월 7일 서독 빌리 브란트 총리가 폴란드 바르샤바 게토(유대인 격리지역) 희생자 추모비 앞에서 무릎을 꿇은 장면을 떠오르게 한다. 미국과 유럽에서 역사 수정주의 비판을 받고 있는 아베 총리는 이런 효과를 의식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두 장면은 결정적으로 다른 면이 있다. 바로 진정성이다. 아베 총리가 홀로코스트에 앞서 찾아 사진을 남겨야 할 곳은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후원시설인 나눔의 집이나 중국의 난징(南京) 대학살 기념관이다. 일본이 가해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아베 총리가 실수로 한국이나 중국을 거치지 않고 예루살렘에 먼저 갔다고 하기도 어렵다. 아베 총리는 그동안 강제연행 여부나 피해자 수 등 지엽적인 문제로 본질을 뒤덮으려는 태도를 보여 왔다. 아베 총리가 홀로코스트 기념관에서 한 평화 연설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유다.
독일도 전후 보상이 충분했던 것은 아니다. 극우파의 ‘망언’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브란트 총리는 자국 내의 거센 반발을 무릅쓰고 용기 있는 한 장의 사진을 남겼다. 이 사진은 반성을 의심하는 주변 국가들을 설득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그 후 독일은 통일까지 성취하고 지금은 유럽연합의 중심 국가로 거듭났다.
일본도 그동안 고노 담화, 무라야마 담화 등을 통해 여러 차례 과거를 반성해 왔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 국민들의 가슴을 울린 반성 ‘장면’은 없었다. 위안부 할머니의 손을 직접 잡고 위로하는 총리도 보지 못했다. 말과 글로 내놓은 사죄 담화도 정치인들의 ‘망언’으로 곧바로 뒤집히기 일쑤였다.
최근에는 과거사를 왜 지금 세대가 책임져야 하느냐는 불만까지 터져 나오고 있다. 이 역시 독일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 독일 근현대사 전문인 도쿄대 대학원 이시다 유지(石田勇治) 교수는 마이니치신문 인터뷰에서 “독일의 현 세대는 나치 체제로부터 물려받은 죄는 없지만 문제를 해결해야 할 ‘책임’은 있다고 생각한다. 독일은 세대가 바뀔 때마다 과거의 불법행위를 인정하고 사죄와 보상으로 책임을 다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아베 총리가 일본의 브란트 총리가 되길 기대한다. 전후 70년, 한일 국교정상화 50년을 맞은 올해야말로 역사에 남을 용기를 낼 수 있는 기회다. 이는 일본 국익에도 도움이 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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