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과 대출사기가 끊이질 않고 있다. 20일에는 유명 야구해설위원 하일성 씨(66)가 평소 거래하던 저축은행 직원 사칭 전화에 낚여 피해를 본 사실이 알려졌다. 개그우먼 권미진 씨(27)도 지난해 PC용 인터넷 뱅킹을 노리는 ‘파밍(Pharming)’ 사기에 속았고, 경찰과 공무원도 속아 넘어간다. 세간에 보이스피싱이 알려진 지 10년이 다 되어가지만 피해는 오히려 늘고 있다. 한국인터넷진흥원과 경찰청 등에 따르면 2013년 전체 전자금융사기 피해액은 792억9300만 원이었지만 2014년엔 상반기에만 445억4000만 원에 달하는 등 피해 규모는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7월경 지방 소도시에서 약 1주일간 대출사기 조직에 몸담았다가 불법이라는 걸 깨닫고 도망쳤다는 이모 씨(50·여). 그는 보이스피싱과 대출사기가 끊이지 않는 이유가 “‘걸리면 장땡’ 식으로 무작위 전화하는 게 아니라 목표를 정하고 분석한 다음 작업에 들어가는 식으로 진화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불법 수집된 신용정보와 대출실적 등 개인정보를 바탕으로 피해자들이 꼭 필요로 하는 것을 정확히 공략한다는 것. 목돈이 급한 서민들보다 유리하다고 판단해 서두르지도 않는다. 이 씨는 “피해자가 머뭇거린다 싶으면 ‘일단 생각해 보시라’고 먼저 전화를 끊는다. 그러면 2~3일 뒤에 반드시 전화가 먼저 걸려온다”고 말했다.
이 씨는 최근 보이스피싱이나 대출사기에서 개인사업자를 노린다고 말했다. 신용등급이 낮은 시민들에게 “한 두 달만 거액의 거래 실적을 남겨 신용등급을 높이면 은행같은 제1금융권에서 대출받을 수 있다”고 유혹한다. 속아 넘어간 피해자들은 사업자등록증과 인감증명서, 통장과 체크카드를 보낸다. 이렇게 확보한 사업자등록증과 인감증명으로 명의를 도용해 대부업체에서 거액을 대출받는다. 한 시중은행 직원은 “최근 자기도 모르는 새 대출이 이루어졌다며 은행을 찾는 서민들이 늘었다”고 말했다.
보이스피싱과 대출사기의 필수품인 ‘대포통장’ 확보 방식도 변했다. 이 씨는 “요즘은 노숙자 통장 안 쓴다”며 “거래실적 늘려주겠다며 확보한 통장을 대포통장으로 사용한다더라”고 말했다. 통장 명의자에게는 입출금 내역 문자 알림 서비스를 반드시 해지하라고 압박해 대포통장으로 사용되는지 눈치채지 못하게 한다.
이 씨는 이런 보이스피싱과 대출사기단 사무실이 한국에 있다는 사실에 더 놀랐다고 했다. 이 씨는 “보이스피싱은 중국에서 조선족에 의해 발생한다고 생각해 사무실을 찾을 때 의심도 안 했다”고 말했다. 사무실에는 한두 명만이 일하고 폐쇄회로(CC)TV로 감시해 자료를 빼돌리거나 카메라로 사진 찍는 건 엄두를 내지 못한다. 이 씨는 “팀장 지점장 사장이란 사람들이 있었는데 얼굴도 못 보고 전화로만 통화했다”며 “점조직보다 더 작은 단위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사기로 돈을 잃은 사람은 물론, 뜻하지 않게 대출사기 조직에 근무하게 된 자신도 피해자라는 이 씨는 “비밀 누설했다고 보복할까봐 두렵다”며 “서민을 먹잇감 삼는 사기범들이 빨리 없어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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