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가계부 내가 챙긴다]
[2부 : 복지의 덫에 빠진 재정]<上>구조조정 필요한 과잉복지
《 “어린이집이 공짜인데 안 보낼 이유가 있나요.” 두 딸을 둔 최주식(가명·34·서울 송파구) 씨는 헬스클럽을 운영하며 월 평균 900만 원 정도 번다. 그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데도 첫째 딸(2)을 어린이집에 공짜로 보내고 있다. 첫째가 어린이집에 간 뒤 가사도우미가 6개월이 지난 둘째 딸을 돌보는 동안 최 씨의 아내는 취미생활을 즐긴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면 정부가 월 보육료로 22만∼77만 원을 주고, 가정에서 키우면 10만∼20만 원을 주는 보육체계 때문에 생긴 양상이다. 최 씨는 “첫째와 어린이집에 간 첫날 대기자가 너무 많아서 놀랐고, 비용이 모두 무료라는 얘기를 듣고 한 번 더 놀랐다”고 말했다. 전체 복지예산 중 정부가 의무적으로 써야 하는 금액이 2018년에 102조 원으로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지금처럼 ‘보편적 복지’ 기조를 유지하다가는 재정문제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으로 변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꼭 써야 하는 분야에만 돈을 써도 나라살림이 빠듯한 만큼 선별적 복지로 서둘러 선회하지 않으면 계층 간 갈등관리가 불가능해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
○ ‘재정 폭탄’ 돌리기 이미 시작
현재 정부가 관리하는 재정 전망은 모두 중앙정부 중심이다. 기획재정부가 중기재정전망에서 복지 분야 의무지출이 올해 77조3000억 원에서 2018년 96조4000억 원으로 늘어난다고 본 것도 이런 ‘중앙의 시각’이다
이것만으로도 큰 부담이지만 나라 전체로 보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무상급식, 누리과정 등 지방자치단체와 지방 교육청이 부담하는 극히 일부 무상복지 예산만 합해도 연도별 의무지출 규모는 5% 안팎 증가한다.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식으로 재원을 조달하면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재정 폭탄’을 돌리기 시작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더 심각한 문제는 무상복지 정책이 비효율적으로 운영되는데도 궤도 수정이 힘든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초등돌봄교실 사업 예산은 2010년 1743억 원에서 2013년 2243억 원으로 500억 원(28.7%) 증가했지만 이 기간 학생 1인당 지원액은 2010년 167만 원에서 2013년 140만 원으로 되레 감소했다. 다른 교육복지 예산을 일부 저소득가구 자녀에게만 쓴 뒤 남는 돈을 초등돌봄교실 사업에 투입하면 1인당 지원액 감소를 막을 수 있지만 기타 교육복지 예산도 한 번 나가기 시작한 만큼 줄이기 어렵다.
의무적 복지사업에다 정부 재량으로 지출할 수 있는 사업을 더한 전체 복지예산은 2018년이면 최소 140조 원대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덩치를 키워도 의무지출이 전체 복지예산의 70∼80%를 차지하면 국민의 복지갈증을 해소하기 어렵다. 실제 의무지출 대상인 무상급식 예산은 2013년 기준 1조5000억 원으로 2010년(5000억 원)의 세 배 수준으로 늘었다. 급식에 돈을 많이 쓰는 바람에 컴퓨터, 수업 부교재 등 교육복지 예산은 2010년 4조3000억 원에서 2013년 2조8000억 원으로 급감했다. 무상급식 때문에 수업의 질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전체 재원이 늘지 않는 한 뚜렷한 해법이 없다.
○ 취약계층이 원하는 복지로 재구성
‘복지재정 폭탄’의 뇌관은 공적연금이다. 정부는 2005년부터 2014년까지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사학연금에 총 51조4000억 원을 썼다. 연금재정 적자를 메우는 보전액이 25조3000억 원, 공무원 군인 교사가 내는 연금보험료만큼 정부가 추가로 내주는 부담금이 26조1000억 원이었다.
공적연금 중 재정난이 가장 심각한 공무원연금은 2006년만 해도 적자가 6000억 원 선이었다. 하지만 금융위기 당시인 2008년 1조 원 선을 넘어선 뒤 올해는 2조5000억 원에 이른다. 기존 공무원의 납입보험료가 별로 늘어나지 않은 가운데 퇴직 공무원들이 받아가는 연금이 빠른 속도로 늘었기 때문이다.
군인연금도 이미 적자를 내고 있다. 사학연금은 당장은 흑자지만 2023년경부터는 적자로 돌아설 것으로 정부는 예상한다. 정부는 최근 정치권의 반발로 공무원연금 개혁만 추진하고 사학연금과 군인연금 개혁은 검토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정치적 이유로 개혁을 미루다가는 국가적 재앙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다.
재정 전문가들은 이제 복지제도에서 ‘정치’를 빼고 제도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고 본다. 취약계층이 원하는 제도 위주로 시스템을 바꿔야 복지의 질을 높이면서 재정건전성 악화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대규모 재원이 드는 복지프로그램을 도입한 뒤 기계적으로 운영할 게 아니라 5년마다 양극화 해소에 도움이 됐는지 검증해 제도를 수정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반장식 서강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장은 “가구별 자산과 소득에 대한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복지제도를 차등 적용하는 한편 현재 중앙과 지방에 흩어져 있는 수십 개의 복지서비스를 통합해서 운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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