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조 무상보육비 줄여 장애인-비정규직 혜택 늘려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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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가계부, 내가 챙긴다]
[2부 : 복지의 덫에 빠진 재정]<下>줄이고 늘릴 공약 가리자

‘축소할 공약과 집중할 공약을 가려라.’

올해 정부 복지예산 116조 원 가운데 어떤 일이 있어도 반드시 돈이 나가는 ‘의무지출액’이 77조 원(66%)에 이르면서 정부가 그때그때 필요한 복지 수요에 대응하기 어려워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체 복지 지출 규모가 눈덩이처럼 커져 사회간접자본(SOC), 산업, 국방 등 다른 핵심 분야가 복지에 발목을 잡힐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복지 및 재정 전문가들은 정부가 복지공약을 전면 재점검해 구조조정에 나서야 한다고 본다. 정치적 이유로 효율성을 따지지 않고 나랏돈을 무차별 지원했던 사업을 줄이는 대신 취약계층이 실제 원하는 분야에 재원을 집중해 복지의 효율성을 높이자는 것이다.

○ 3대 무상복지 재조정 필요


전문가들은 복지 공약 가운데 ‘1순위 구조조정 대상’으로 0∼5세 유아를 대상으로 한 무상보육을 꼽는다. 현 정부 임기 내 11조8000억 원이 드는 대규모 사업이지만 가구별 소득 수준을 고려하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지원하다 보니 재정이 낭비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따라 0∼2세 유아를 둔 가구를 떼어내 제도를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많다. 이 연령대는 엄마의 보살핌이 가장 필요한 시기인 만큼 가급적 가정보육을 장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취지에 따라 맞벌이 부부 등 일하는 엄마에게는 현행 보육 지원을 유지하되 소득 상위 30%에 속하는 전업주부가 있는 가구에 대한 보육지원금을 축소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스웨덴에서 0∼2세의 보육시설 이용률은 10% 미만”이라며 “상위층 전업주부 가구에 지원되는 보육지원금을 줄여 전반적인 보육시스템을 개선하는 데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또 지자체 재정 상황이 여의치 않은 점을 감안해 무상급식 대상자 수를 조정하자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실시되는 무상급식과 관련해 전국 지방자치단체와 시도교육청은 올해 2조7000억 원 정도를 투입할 예정이다. 구인회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복지의 우선순위를 정할 때 급식은 시급한 사안이라고 볼 수 없다”며 “일단 무상급식 대상자를 50%로 줄였다가 장기적으로 확대하는 방안 등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고교 무상교육은 현재 나라 곳간 사정을 감안할 때 국민에게 ‘공약을 지킬 수 없다’고 솔직하게 고백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 공약에 드는 재원은 전액 지방교육재정교부금에서 조달하게 돼 있다. 당초 예정대로 2017년 고교 무상교육이 전면 시행되면 연간 2조3000억 원이 나라 곳간에서 빠져나간다. 누리과정, 초등학교 돌봄교실 등 이미 시행 중인 사업만으로도 교부금이 부족한 점을 감안하면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다. 정부 당국자는 “임기 내 공약을 완성한다는 목표지만 시행 시기를 좀 더 늦출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 국공립 어린이집 늘려 아동학대 예방

무상복지의 덩치를 줄이면 국공립 어린이집 확대, 장애인 권익 보호, 비정규직 차별 해소 등 꼭 필요한 복지 분야에 재정을 더 많이 투입할 여력이 생긴다.

특히 국공립 어린이집은 최근 사회적 이슈로 부각된 아동학대의 해법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시설 확충이 시급하다. 정부는 매년 국공립 어린이집을 150개씩 늘리겠다고 했지만 2013년과 지난해 2년 동안 250개를 늘리는 데 그쳤다. 전체 민간 어린이집이 3만8000개를 넘어선 것을 감안하면 속도가 더디다. 게다가 정부는 2017년까지 국공립 어린이집에 다니는 영유아의 비율을 30%까지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국공립 어린이집 약 5300개가 더 필요하다. 땅을 매입해 신축하는 방식으로는 10조6000억 원이라는 막대한 재원이 든다. 무상복지 재원의 일부를 이쪽으로 돌리고 민간 어린이집을 국가가 매입해 국공립으로 전환하는 방식을 조합하면 사업 추진에 속도를 높일 수 있다.

전문가들은 장애인 기초급여를 확대하고 특수학교를 늘리는 장애인 권익보호 정책도 재원 확충이 시급한 항목으로 보고 있다. 아울러 고령층에 대한 기초연금 지급, 의료의 보장성 강화 공약은 이미 사회적 합의를 토대로 정책이 추진 중인 만큼 현 수준을 유지할 정책으로 꼽혔다. 다만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계층에 지급되는 기초연금 규모를 약간 조정해 건강보험에서 고령층에 지급하는 질병 치료비 수준을 높이는 등 의료 지원 수준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제안이 나온다.

재정 전문가들은 한국의 복지정책이 정치적인 이유로 시작되는 바람에 제도의 효율성이 떨어졌다고 진단했다. 지속 가능한 복지체계를 만들려면 복지 혜택을 필요로 하는 대상을 정밀하게 분석해 맞춤형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배상근 한국경제연구원 부원장은 “차상위계층 등 복지의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에게 재원을 지원하되 일자리를 늘리고 성장 잠재력을 끌어올리는 방안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 세종=김준일·홍수용 기자
#무상보육비#장애인#비정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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