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 사람 인기척이나 고소한 팝콘 냄새에도 신경이 곤두서는 극장 안. 불현듯 치솟은 하얀 불빛이 시선을 빼앗는다. 살펴보니 앞에 앉은 20대 여성이 카카오톡으로 친구와 영화 감상평을 주고받고 있다. 화를 억누르고 스크린에 집중하려는데 어디선가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극장이니까 나중에 통화하자”며 전화를 끊는 이 중년 남성은 그래도 양반이다. 세 줄 앞 2시 방향에 앉은 30대 남성은 도통 전화를 끊을 생각이 없어 보인다. 주위를 의식해 목소리를 한껏 낮췄지만 영화 대사 사이로 통화 내용도 고스란히 들려온다.
26일 본보 취재진이 찾은 서울 영등포의 한 멀티플렉스 극장 안 풍경이다. 평일 낮인데도 100여 명의 관객이 몰려 좌석을 절반 이상 채우고 있었다. 10분이 넘는 광고가 끝나고 뒤늦게 입장한 관객 3명이 휴대전화를 켜고 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자리를 찾아야 하니 이 정도는 이해할 만했다.
하지만 영화관 휴대전화 사용 예절의 민낯은 영화 시작 5분도 채 안 돼 드러났다. 마무리를 하지 못했는지 관객들이 여기저기서 메신저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영화 상영시간 135분 동안 관객들은 44차례나 문자메시지나 카톡,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사용했다. 통화하는 관객도 6명이나 있었다. 그럴 때마다 주위 관객들이 눈치를 줬지만, 휴대전화 불빛은 줄어들지 않았다. 상영 내내 앞좌석에서 휴대전화를 사용한 관객에게 시달렸던 박성인 씨(23·여)는 “옷이나 가방으로 휴대전화를 가리거나 화면 밝기를 최대한 낮추는 노력이라도 해줬으면 좋겠다”며 씁쓸해했다.
‘영화관 민폐족(族)’도 사정은 있다. 대기업에 다니는 신모 씨(32)는 “퇴근 후나 주말에도 메신저 단체방에서 상사가 말을 걸거나 회의가 이어지기도 한다. 영화를 보다가도 답을 해야 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이른바 ‘카톡 지옥’에 빠진 직장인의 비애다.
하지만 극장 안에서는 영화보다 게임에 집중하는 ‘멀티족’도 있었다. 평소 영화관 휴대전화 사용을 부정적으로 생각해 왔다는 직장인 김모 씨(29)는 “1시간쯤 지나자 영화가 너무 지루해서 10분 정도 게임을 했다. 화면 밝기를 낮춰 피해가 없을 줄 알았다”며 머쓱해했다.
남을 배려하지 않는 휴대전화 에티켓은 화를 부르기도 한다. 지난해 1월 미국 플로리다 주에서는 70대 남성이 영화관 앞자리 관객 2명에게 총을 쏴 한 명이 숨졌다. 은퇴한 경찰인 이 남성은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앞자리 관객과 말다툼을 벌이다 분을 참지 못해 방아쇠를 당겼다. 얼마 전 국가대표 출신의 유명 축구선수 부인도 영화 상영 중에 찍은 사진을 SNS에 올렸다가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지난해 7월 기준 국내 이동통신 가입자는 5600만 명. 스마트폰 보급률은 84%에 달한다. 스마트폰 없이는 살 수 없는 이른바 ‘호모스마트쿠스’ 시대다. 영화관에서라도 휴대전화를 쉬게 해 주는 여유가 ‘셀티켓(휴대전화 예절)’의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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