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9일 대표 취임 첫 일정으로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의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 묘소를 참배했다. 당 대표 선거 때부터 약속한 ‘중도 강화’ 전략의 하나였다. 그러나 이날 신임 최고위원들은 참배하지 않았다. ‘문재인호’가 첫날부터 지도부 사이에서 엇박자가 난 것이다.
이날 현충원을 찾은 문재인 대표는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의 묘소 참배 후 “두 분 대통령에 대해 과(過)를 비판하는 국민이 많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분들의 공(功)을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도 많다”며 “이런 평가의 차이는 결국 역사가 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두 분의 묘역 참배를 두고 갈등 하는 것은 국민 통합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갈등 끝내자는 마음으로 참배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문재인 대표는 또 “사실 나는 진정한 국민 통합이 묘역참배로 이루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진정한 국민통합은 역사의 가해자 측에서 지난 잘못에 대해서 반성하고, 국민과 피해자들을 위로해서 피해자들도 용서하는 마음을 가지게 될 때 비로소 진정한 화해통합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 자리에는 문희상 전 비상대책위원장과 우윤근 원내대표가 함께했다. 문재인 대표는 전날 당선 직후 최고위원들과 간담회를 갖고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의 묘소 참배 문제를 논의했지만 일부 최고위원이 참배에 부정적인 의견을 보였다. 결국 최고위원 모두 불참하는 것으로 정리됐다.
문재인 대표의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 묘소 참배를 두고 당 안팎의 비판은 거셌다. 정청래 최고위원은 “두 전 대통령 묘소를 참배하는 것보다 백범 김구, 인혁당 애국열사의 묘소 참배가 우선이다”라고 지적했다. 노회찬 정의당 전 대표도 “대한민국을 만들고 지켜온 분들에게 경의를 표해야 한다면 현충원 무명용사탑과 보라매공원의 산업재해 희생자 위령탑을 참배하면 된다”고 비판했다. 부정적인 의견이 제기되자 문재인 대표는 이날 오후 예정에 없던 일정을 추가해 백범 김구 묘소와 윤봉길 이봉창 안중근 의사 등 임시정부 요인 묘소도 참배했다.
그동안 야당에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 묘소 참배는 민감한 사안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7년 대선 당선자 신분으로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 묘소를 참배했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의 묘소를 찾지 않았다.
2012년 대선 당시 범야권 대선주자로 경합을 벌였던 문재인 대표와 안철수 전 공동대표의 선택도 달랐다. 안철수 전 대표는 대선 출마를 선언한 직후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의 묘소와 김대중 전 대통령, 박태준 전 국무총리의 묘소를 참배했다. 반면 문재인 대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묘소만 찾았다. 2013년 당시 김한길 민주당 대표도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 묘소 참배를 시도하려다가 당내 반발에 부딪혀 포기했었다.
문재인 대표가 야당 대표로는 처음으로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의 묘소를 참배한 것에 대해 “중도 노선을 강화해 통합의 리더십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차기 대선을 노리는 문재인 대표가 ‘중도층 껴안기’에 나섰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표는 취임 직후 박근혜 정부와의 전면전을 부각시키며 야당성 강화에 나섰다. 그러나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 묘소 참배를 놓고 생긴 당내 갈등처럼 중도 노선 강화에 대한 당내 반발이 적지 않다. 당의 한 관계자는 “대표로서 당 장악력을 높이고, 대권 주자로서는 지지층을 확대해야 하는 과제가 문재인 대표에게 놓여 있다”며 “상충하는 두 과제를 풀기 위한 문재인 대표의 고민이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이승만-박정희 참배. 사진=동아일보 DB 동아닷컴 디지털뉴스팀 기사제보 dnew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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