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NC의 김경문 감독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감독 중 한 명이다. 한국시리즈에서 우승을 하지는 못했지만 감독으로서 그는 승승장구 중이다. 하지만 그의 프로 선수 생활은 달랐다. 프로 통산 타율은 0.220으로 지난해까지 500경기 이상 뛴 프로야구 선수를 통틀어 10번째로 낮다. 시즌 최고 타율도 0.263이었다. 그럼에도 프로야구 원년 멤버인 그는 11년 동안 선수 생활을 했다. 이유는 하나다. 그의 포지션이 타율 0.200만 넘겨도 된다고 감독들이 흔히 말하는 포수였기 때문이다.
포수는 야구에서 가장 힘든 자리다. 앉고 일어서기를 수없이 반복해야 할 뿐만 아니라 투수가 던지는 모든 볼의 종류와 방향도 매번 결정해야 한다. 빛은 안 나지만 그라운드에서 팀에 필요한 온갖 일을 해야 하는 자리인 것이다. 그만큼 육체적 정신적 피로가 클 수밖에 없다. 팀당 128경기를 치른 지난해 프로야구에서 규정타석을 채운 포수가 단 한 명도 없을 정도다.
역설적으로 그 때문에 팀 성적이 좋으려면 먼저 좋은 포수를 보유하고 있어야만 한다. 그런데 문제는 모든 팀이 원하는 만큼 좋은 포수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메이저리그를 호령하고 있는 류현진이 국내 프로야구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 지명을 받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당시 전체 1순위 지명권을 갖고 있던 SK는 포수 이재원을 선택했다(이재원은 지난해 개막 후 석 달 가까이 0.400을 넘는 타율을 유지하며 국내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타자로 성장했다).
하지만 야구를 막 시작하는 어린 선수들이 가장 하기 싫어하는 포지션은 포수다. 힘이 많이 드는데 소위 말하는 폼은 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롯데의 포수 강민호는 타율 0.229, 16홈런 38타점이라는 초라한 시즌 성적으로도 이듬해 자유계약선수(FA) 계약 때 당시로서는 국내 최고액인 75억 원을 받을 수 있었지만.
비슷한 현상이 농구에도 있다. 센터다. 손쉬운 득점을 허용하지 않기 위해 상대 선수가 골밑으로 오는 것을 막아야 하고, 리바운드 볼을 잡아내기 위해 상대 선수를 골밑에서 밀어내야만 하는 포지션이다. 온몸으로 상대 선수와 부딪쳐야 하는 만큼 몸이 성할 수가 없다. 가끔 골밑을 탈출해 외곽에서 슛을 쏘는 부업에 전념하는 센터가 나타나는 것도 그만큼 골밑을 지키는 것이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센터를 보유한 팀은 여지없이 경기에서 패한다. 고려대 농구팀이 49연승 신화를 쓰던 시절이 있었다. 불세출의 슈터 이충희 전 감독이 고려대에 다닐 때였다. 그러나 당시 동갑내기 센터 임정명 전 감독이 고려대의 골밑을 지키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기록이었다는 것이 농구인들의 일치된 의견이다. 모든 농구 감독들이 항상 우승 후보로 센터가 강한 팀을 꼽는 이유다.
지난해 가장 큰 화제의 인물은 드라마 미생의 장그래였다. 그의 성공 신화를 보면서 많은 직장인들은 대리만족을 느꼈다. 장그래의 바람막이 역할을 해 준 오상식 과장도 못지않은 호응을 얻었다. 그런데 그들의 팀에 온갖 잡일을 도맡아 하면서도 스포트라이트는 거의 받지 못하는 김동식 대리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힘들어도 팀을 위해 오 과장과 장그래를 헌신적으로 도와주는 김 대리를 보면서 경기장의 포수와 센터를 떠올렸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모두가 야구의 투수와 농구의 슈터가 되기를 원하는 시대다. 하지만 더 좋은 팀을 만들기 위해서는 더 좋은 포수와 센터가 더 많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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