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히 비행기 안내 방송을 듣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땅콩 회항’과 바비킴 사건의 여파일까. 스튜어디스에게 물어보니 “최근에 바뀐 안내 멘트”라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미뤄뒀던 20년 근속 휴가를 뒤늦게 다녀왔다. 시드니는 더웠다. 한겨울에 떠났는데 거기는 여름이었다. 마침 아시안컵 축구 결승전이 열렸다. 시드니에 사는 지인 부부가 표를 예매해놓은 덕분에 한국과 호주 결승전을 현장에서 봤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주 경기장이었던 ANZ스타디움에 가기 위해 도시 철도를 탔다. 축구 경기 입장권을 보여주면 열차 탑승이 무료였다. 많은 인파가 신속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개찰구도 열어 놨다. 대중교통 이용을 유도하기 위한 방안이라고 했다. 축구 대표팀 경기가 열렸다 하면 교통 혼잡으로 주변이 몸살을 앓는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이 생각났다.
시드니 올림픽 파크에 있는 스타디움은 호주 유니폼 색깔인 노란색으로 차려입은 사커루(축구+캥거루·호주 축구팬)들로 가득했다. 시드니 오페라하우스가 아닌 축구장에 앉아있는 스스로가 낯설었지만 곧 ‘대∼한민국’을 목청껏 외쳤다.
후반전 종료 직전의 짜릿한 동점골. 붉은 악마들의 함성은 오랫동안 스타디움을 뒤덮었고 사커루의 침묵은 그만큼 길었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영화 같던 이날 결승전은 ‘스포츠는 각본 없는 드라마’라는 진부한 표현을 실감나게 했다.
더 큰 감동을 만난 건 경기장 밖에서였다. 스타디움을 나오자 숲 속 빼곡한 나무처럼 올림픽 광장에 세워진 철기둥 수백 개가 눈에 들어왔다. 기둥마다 알파벳 순서로 이름이 촘촘히 새겨져 있었다. 시드니 올림픽과 장애인올림픽에 참여한 자원봉사자들 이름이었다.
‘올림픽 기억들(Games Memories)’로 불리는 이 철기둥 숲은 기둥마다 250명씩, 모두 296개 기둥에 7만4000명의 이름을 영원히 간직했다. 매크니시 대니얼, 매코바 제인, 매클린 세라, 매클레넌 게리, 매클로드 앨런…. 낯선 이름들을 읽는데 마음이 뭉클해졌다. 영화 ‘명량’의 대사 한 대목이 머리를 스쳤다.
‘이순신 리더십’ 신드롬을 일으키며 숱한 명대사를 남긴 이 영화에서 내 마음을 움직인 대사는 ‘신에게는 아직 열 두 척의 배가 남아있사옵니다’도,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다’도 아니었다. 이순신이 전사한 부하의 갑옷을 그의 아들에게 전해주며 건넨 한마디였다. “내 너의 애비와 네 이름을 잊지 않겠다….”
어쩌면 좋은 리더란 기억해 주는 사람이 아닐까. 잊지 않는다는 것, 기억한다는 것은 감사할 줄 안다는 거다. 큰 상으로 공을 치하하고 앞에서 박수갈채를 보내긴 쉬워도 고마움을 잊지 않는 건 참 어렵다.
시드니 올림픽 자원봉사자가 아이의 손을 잡고 찾아와 기둥에 새겨진 자신의 이름을 자랑스럽게 보여주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흐뭇하다. 우리는 그동안 한 번의 올림픽, 세 번의 아시아경기, 그리고 수많은 국제 행사를 치렀다. 자원봉사 발대식은 성대했지만 끝나면 금세 잊혔다.
‘철기둥 숲’이 만들어진 건 2002년. 시드니 올림픽이 끝나고 2년이 더 흘러서다. 올림픽을 치르고 각자 뿔뿔이 흩어진 후에도 자원봉사자들을 잊지 않고 기둥에 이름을 새겨 넣은 마음이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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