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 배우’ 오달수 “그런 숫자는 배우에게 독과 같아”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16일 22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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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부터 지켜온 헤어스타일처럼 오달수는 무던한 배우다. 출연 영화 통산 1억명의 관객을 불러 모은 힘도 그만이 지닌 향기가 아닐까. 스포츠동아DB
1990년대부터 지켜온 헤어스타일처럼 오달수는 무던한 배우다. 출연 영화 통산 1억명의 관객을 불러 모은 힘도 그만이 지닌 향기가 아닐까. 스포츠동아DB
“전 연기로 관객에게 말을 거는 게 업(業)인 사람입니다. 숫자는 상관없어요. 한 명이라도 귀 기울주면 됩니다. ‘1억 배우’요? 그건 술자리 땅콩안주 같은 겁니다. 정말 위대한 건 제가 하고팠던 얘기를 기꺼이 들어준 분들이죠.”

배우 오달수는 듣던 대로 술을 좋아했다. 9일 오후, 연이은 인터뷰로 벌써 몇 순배는 돌았을 터. 앉자마자 “일단 한 잔 하시고” 잔을 채운다. “어젯밤 피아니스트인 조카와 인생 상담하느라 새벽 4시까지 달렸다”며 해장술을 마셔야 된다나. 엉겁결에 받고 보니 참 달다. 1000만 영화 ‘국제시장’이 상영 중인데 ‘조선명탐정: 사라진 놉의 딸’(11일 개봉)도 벌써 100만 명 돌파했다. 그가 내민 술잔엔 무슨 얘기가 담겨있을까.

-연달아 작품을 선보인다. 충무로에서 가장 바쁜 배우 아닌가.


“체력이 부칠 때도 있다. 연기란 게 쏟아 붓는 일이니까. 아직 마실 수 있어 다행이다, 허허. 역할에 깊이 빠지는 성향이 아니라 다작이 가능한지도 모르겠다. 추송웅 선생님은 ‘전생에 뭔 죄를 지어 피터(연극 ’빨간 피터의 고백‘)를 떠나보내게 됐나’라고 하셨다. 그 정도로 몰입한 적이 없었나 보다. 연극은 가끔 빠져나오기 힘들다.”

-그런데도 계속 무대에 오른다. 극단(신기루만화경) 대표잖나.


“배우에게 연극은 밥이다. 안 먹고 살 순 없다. 영화는 19세기말 발명된 매체지만, 연극은 인류 초기부터 이어졌다. 본능 같은 거라 할까. 물론 힘들다. 영화는 한 씬 찍고 쉬기라도 하지. 연극은 영혼이 빠져나간다. 그래도 막을 올리면 안식을 얻는다. 무대에서 주고받는 호흡, 관객과의 교감은 배우에게 모든 것이다.”

-영화에서 배우들과 호흡은 어떤가.


“김명민은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에 이어 2번째다. 안 맞았다면 다시 찍질 않았겠지. 내 연기인생에서 손에 꼽을 배우다. 최고는 송강호 형 아닐까. 7편을 함께 찍었다. 식상한 표현이지만 눈빛만 봐도 안다. 그런데도 ‘변호인’ 때는 많이 놀랐다. 뭔가를 뛰어넘어버렸다. 그렇게 친한데도 몰입할 땐 근처에 가지도 못하겠더라.”

-본인도 연기의 달인 아닌가.


“부탁인데 면전에서 그런 소리 마라. 부끄러워 죽겠다. 어떤 작품이건 최선을 다할 뿐이다. 배우마다 연기를 대하는 태도가 다른데, 난 ‘거리두기’를 선호한다. 일상적인 덤덤함을 보여주려 노력한다. 줄곧 그 틀을 지켜왔는데 세상이 바뀌어서 이젠 칭찬도 가끔 듣는다. 역시 뭐든 오래하고 볼 일이다. 연극판 후배들에게도 ‘버텨라’란 얘길 자주 한다.”

-버틴다고 다 되는 건 아니잖나.


“목적을 갖고 버티면 거의 실패하더라. 유명해져야지, 돈 벌어야지 하면 맘대로 안 된다. 연기 자체만 봐야 한다. 서른일곱에 ‘올드보이’ 찍고 겨우 얼굴도장 찍었다. 그때까지 어떻게 살았겠나. 최근 영화 ‘쎄시봉’에 나온 조복래(송창식 역)한테도 그랬다. 조급해마라. 버티면 기회는 온다. 아버지도 살아계셨으면 이젠 맘 좀 놓으셨을 텐데….”

-영화 ‘국제시장’ 보셨으면 좋았겠다.


“크으…, 장난 아니었겠지. (잠깐 허공을 보더니) 당신 세대 얘기니 더 반가워하셨을 텐데. 윤제균 감독부터 배우들 모두 그랬지만, 아버지 생각 많이 났다. 학교 선생님이셨는데, 자식 연기하는 극장 꼴 보기 싫어 퇴근 때마다 빙 둘러서 돌아가셨다. 그래도 돌이켜보면, 기죽지 마라며 술값 찔러주는 건 아버지였다.”

-1억 배우가 될 때까지 수많은 작품들이 있었는데.


“그런 숫자는 배우에게 독과 같다. 한번 재밌게 웃을 뿐, 절대 맘에 둬선 안 된다. 그냥 영화를 많이 찍은 거다. 영화계 식구들이 자주 찾아준 게 고마울 뿐이다. 맘에 남는 건 흥행작이 아니다. 오히려 ‘구타유발자’처럼 안타까운 작품이 눈에 밟힌다. 연기하면서 행복했고, 원신연 감독도 고생 많았는데…. 부르면 언제든 달려가겠다. 아, 공포물은 안 된다. 무서우면 아예 시나리오 자체를 읽질 못한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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