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독일 국방장관(57·사진)은 첫 여성 국방장관이다. 군 경력은 전무하지만 18여만 명에 이르는 독일군의 평시 작전통제권을 쥐고 있다. 그는 2005년부터 10년째 앙겔라 메르켈 내각에서 3차례나 장관을 지낸 ‘실세 장관’이다. 대중적인 인기도 높아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로 꼽힌다.
폰데어라이엔 장관은 42세에 정계에 입문한 산부인과 의사 출신의 늦깎이 정치인이다. 2001년 하노버 지방선거에 출마해 당선됐고 2003년 사회보장과 의료보험 제도 개혁에 두각을 나타면서 니더작센 주의 사회 분야 담당 장관에 올랐다.
그는 보수 정당인 기독민주연합(CDU)에서 가정과 일의 양립 가능성을 몸소 증명한 ‘슈퍼맘’이다. 의대 교수이자 기업 대표인 남편 하이코 폰데어라이엔과의 사이에 무려 7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괴팅겐대 합창단에서 처음 만난 남편은 바쁜 아내를 위해 가사를 분담하고 있다. 독일 총선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저출산 이슈에서 다산의 장관은 아이가 없는 메르켈 총리의 정치적 이미지를 보완한다. CDU는 2005년 총선에서 정치 경력 5년에 불과한 그를 차기 가족여성부 장관으로 발표해 상당한 득표 효과를 거뒀다.
폰데어라이엔 장관은 일하는 여성의 관점에서 정책을 추진할 때가 많다. 가족여성부 장관으로 재직할 때 출산과 육아 지원 정책을 대폭 강화했다. 2009년 육아휴직을 사용한 여성에게 급여의 67%를 보조하는 정책을 추진해 큰 지지를 받았다. 재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출산이 늘어야 경제가 산다”며 밀어붙여 ‘저출산 파이터’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이후 남성에게도 2개월의 유급 육아휴가를 도입했다. ‘아동 포르노 전쟁’을 선포해 인터넷 검열을 강화했고 국방장관에 오른 뒤에는 군인이 자녀와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항상 부드러운 모습만 보인 것은 아니다. 2013년 기업에서 여성의 고위직 비율을 정부가 강제로 할당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를 반대하는 메르켈 총리에게 공개적으로 반기를 들었다. 당론에 반대해 최저임금제 도입을 지지하며 각을 세우기도 했다. 메르켈 3기 내각에서 보건부 장관으로 거론되자 메르켈 총리를 직접 만나 보건부 장관에 임명된다면 참여하지 않겠다며 배수진까지 치고 국방장관직을 얻어내는 강단도 보였다. 사회복지 분야 장관만을 맡으면 차기 총리 후보가 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2017년 임기를 마치는 메르켈 총리의 자리를 넘겨받으려면 국방장관 자리는 기회이자 넘어야 할 산이다. 하지만 국방장관 직무와 관련된 평가는 호락호락하지 않다. 가족여성부 장관(2005∼2009년)과 노동부 장관(2009∼2013년) 때처럼 좋은 평가가 나오지 않는다. 독일은 지난해 이슬람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와 맞서는 쿠르드 자치정부에 미사일과 소총 등 무기를 제공하려고 했으나 군용기 고장으로 네덜란드의 수송기를 빌려 무기를 운반해야 했다. 군사장비 대부분이 ‘고철 덩어리’에 불과하다는 보고서도 잇따라 공개됐다. 세계 4위 경제대국에 걸맞은 역할론을 적극 주장했던 폰데어라이엔 국방장관에게 “집안 단속이나 잘하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독일 일간지 디 벨트와 ARD방송이 지난해 9월 실시한 공동 여론조사에 따르면 폰데어라이엔 장관의 직무 수행 만족도는 36%에 그쳤다. 국방장관 자리가 적합한지를 묻는 조사에선 61%가 ‘아니다’라고 답했다.
폰데어라이엔 장관이 능력을 입증할 기회는 아직 많다. 2011년 징병제가 폐지되고 병력이 22만 명에서 18만5000명으로 축소되는 등 어려움을 겪는 군을 추스르고 효율적인 군의 기틀을 정비하면 된다. 무인정찰기 ‘유로 호크’ 도입 사업의 실패 이후 국방력 강화에 대한 분명한 청사진을 제시할 수도 있다. 독일인들을 설득해서 패전국의 콤플렉스를 벗고 우크라이나 내전 등에서 경제대국에 걸맞게 기여하는 것도 그의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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