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증나면 버리는 장난감 아닙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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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의 주제는 ‘약속’]<33>반려동물에 상처주지 마세요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장애견 ‘유피’를 입양한 서혜민 씨가 17일 유피를 안고 밝게 웃고 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장애견 ‘유피’를 입양한 서혜민 씨가 17일 유피를 안고 밝게 웃고 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찰나였다. 지난해 2월 칠흑같이 어두운 밤을 뚫고 경기 포천의 한 도로에 헤드라이트 불빛이 번쩍였다. 둔탁한 마찰음이 울려 퍼졌다. 함께 도로를 건너려던 친구는 이내 숨졌다. 살아야 했다. 도로를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뒷다리 감각이 없었다. 애꿎은 앞다리만 허공을 휘저었다. 다행히 사고를 목격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제멋대로 늘어져 있는 뒷다리를 잡고 동물병원으로 향했다. 포천 일대에는 야간 진료하는 곳이 없었다. 날이 밝고 서울 종로구의 한 동물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척추신경을 다쳐 하반신을 쓸 수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주인에게 버림받고 거리를 떠돌던 한때의 애견은 버려진 장애 짐승이 됐다.

6개월여 치료 끝에 동물보호 시민단체 ‘카라’로 보내졌다. ‘유피(UP)’라고 불렸다. 뒷다리로 힘차게 일어서서 뛰어다니길 바라는 사람들의 마음이 담긴 이름이었다. 유피는 카라에서 새로운 주인을 기다렸다.

초록색 주머니에 뒷다리를 넣어둔 채 앞다리만으로 바닥을 기어 다니는 유피에게 마음의 문을 여는 사람은 없었다. 지난해 9월 유피를 처음 만난 서혜민 씨(31·여·초등학교 방과후교실 교사)도 그랬다. 울타리 안에서 다른 강아지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하는 유피가 그저 안쓰러웠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유피가 눈에 밟혔다. 연(緣)이라고 생각했다.

섣불리 장애견을 입양할 수 없었다. 동정심만으로 평생을 함께하겠다고 약속했다가 이를 지키지 못하면 훨씬 큰 상처를 입힐 것을 우려해서다. 지난해 10월 서 씨는 먼저 유피를 ‘임시보호’ 하기로 했다. 입양하기 전 유기견을 평생 반려동물로 돌볼 수 있을지 스스로 시험기간을 둔 셈이다.

유피를 돌보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한 달에 기저귀 값만 10여만 원이 들었다. 기저귀는 대소변을 가릴 수 없는 유피가 서 씨와 함께 살기 위해 꼭 필요한 물품이었다. 화요일마다 뒷다리 근육 강화 치료를 위해 병원도 찾아야 했다. 그래도 서 씨를 보면 ‘탁탁’ 소리가 나도록 꼬리로 바닥을 치며 반기는 유피를 외면할 수 없었다. 서 씨는 3일 유피를 정식으로 입양했다. 유피가 자연사할 때까지 책임 있는 보호자로서 유피에게 최적의 환경과 보살핌을 제공하겠다는 서약서도 썼다.

농림축산검역본부에 따르면 2013년 버려진 동물은 9만7197마리다. 개가 대부분인 유기동물 중 보호자를 찾거나 입양된 비율은 38.4%에 불과하다. 유기동물 보호소에서는 보호기간 10일이 지나면 법적으로 안락사가 가능하다. 전국 보호소의 수용능력을 생각하면 대부분 안락사하는 것이 현실이다. 전진경 카라 이사는 “반려동물을 공산품으로 취급해 거래하고 미적 가치가 떨어지면 버리는 사람들 때문에 소중한 생명들이 희생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매일 특수 제작한 휠체어에 뒷다리를 고정시키고 유피를 산책시키는 서 씨의 당부다.

“반려동물을 키운다는 것은 현실이에요. 돈도 들고 대소변도 치워야 합니다. 평생 함께하겠다는 약속과 책임감 없이 생명을 상품처럼 사지 마세요. 말 못하는 동물이지만 소중한 생명과의 약속은 꼭 지켜야죠.”

박성진 기자 psjin@donga.com
#장난감#반려동물#상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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