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 리포트]지방에선…“영화상영 한다더니 어린이 재롱잔치”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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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할 것 없는 ‘문화가 있는 날’]대전 대구 광주 현장 찾아가보니

와 봤더니 다른 행사… 시민들 헛걸음 문화가 있는 날을 맞아 영화를 상영하겠다고 안내했던 광주의 한 종합문화예술회관 공연장에서 예정과 달리 어린이집 원생들의 재롱잔치가 열리고 있다. 광주=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와 봤더니 다른 행사… 시민들 헛걸음 문화가 있는 날을 맞아 영화를 상영하겠다고 안내했던 광주의 한 종합문화예술회관 공연장에서 예정과 달리 어린이집 원생들의 재롱잔치가 열리고 있다. 광주=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문화가 있는 날’이었던 지난달 25일 오후 7시 광주의 한 종합문화예술회관 공연장. 문화가 있는 날 홈페이지에서 영화 ‘수상한 그녀’를 상영한다고 예고한 곳이었다. 하지만 정작 공연장을 찾았을 때는 한 어린이집 원생들의 재롱잔치가 한창이었다.

공연장 출입문에는 안내문 한 장이 붙어 있었다. ‘이날 문화가 있는 날 행사는 부득이한 사정으로 진행하지 못합니다.’ 변경 사실이 문화가 있는 날 안내 홈페이지에 공지조차 되지 않아 헛걸음한 사람도 있었다. 종합문화예술회관 측은 “문화가 있는 날 행사 담당 직원이 교체돼 다른 직원이 업무를 미처 모르는 상황에서 실수로 공연장을 어린이집 행사에 대관해줬다”고 해명했다. 박모 씨(27·여)는 “‘문화가 있는 날’에는 평소 보기 힘든 뮤지컬을 싼값에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철지난 작년 영화나 트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동아일보가 25일 대전 대구 광주 등 지역에서 진행된 문화가 있는 날 현장을 찾아가 본 결과 이처럼 홈페이지에 예고한 대로 운영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프로그램이 부실해 일반인의 참여가 저조하거나 평소 하던 프로그램을 문화가 있는 날 프로그램으로 살짝 바꾼 경우가 적지 않았다.

행사뒤 오리엔테이션… 대학 신입생만 북적 지난달 25일 대전 한남대 서의필홀에서 문화가 있는 날 프로그램으로 열린 대전시향 특별연주회. 관객 대부분은 공연이 끝난 뒤 오리엔테이션을 들어야 하는 이 대학 신입생이었다. 한남대 제공
행사뒤 오리엔테이션… 대학 신입생만 북적 지난달 25일 대전 한남대 서의필홀에서 문화가 있는 날 프로그램으로 열린 대전시향 특별연주회. 관객 대부분은 공연이 끝난 뒤 오리엔테이션을 들어야 하는 이 대학 신입생이었다. 한남대 제공
○ 홍보 부족으로 존재 자체를 몰라

이날 오후 3시 대전 한남대 서의필홀에서 열린 대전시향의 특별연주회는 ‘문화가 있는 날’ 프로그램으로 진행됐다. 하지만 객석을 채운 관객 대부분은 이 대학의 신입생들이었다. 공연이 끝난 뒤 학생회 오리엔테이션이 예정돼 있었다. 공연장에서 만난 유모 씨(21)는 “다들 오리엔테이션 연계 행사로 알고 참석했다”며 “‘문화가 있는 날’은 뭔지 모른다”고 말했다.

대전 중구 대흥동의 한 소극장 앞에서 만난 김모 씨(32)도 문화가 있는 날이어서 연극을 보러 왔느냐는 질문에 “문화가 있는 날이 뭐냐”고 반문했다. 문화가 있는 날에 대한 설명과 함께 연극 관람가가 40% 이상 할인된다는 정보를 알려주자 “몰랐다”고 답했다.

같은 날 광주 동구의 무등갤러리. 오후 8시까지 무료 관람이 가능한 것으로 문화가 있는 날 홈페이지에 안내돼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오후 7시 40분 방문했을 때 이미 출입문은 잠겨 있었고 내부의 불도 모두 꺼져 있었다. 관계자는 “개인 사정으로 일찍 문을 닫는 실수를 한 것 같다”고 해명했다.

대구 중구 포정동 대구근대역사관도 이날 문화가 있는 날 프로그램으로 오후 8시까지 연장 개방했다. 하지만 오후 7시 반경 1, 2층을 통틀어 관람객은 한 명도 없었다. 역사관 측은 “문화가 있는 날을 맞아 야간 시간을 연장하고 있지만 이 시간 방문객은 10명 안팎”이라고 밝혔다.

100명 좌석에 10명… 무관심에 참여 저조 지난달 25일 대구 중구 국채보상운동기념관에서 열린 100명 정원의 문화가 있는 날 프로그램에 10여 명의 참석자들이 자리에 앉아 있다. 대구=장영훈 기자 jang@donga.com
100명 좌석에 10명… 무관심에 참여 저조 지난달 25일 대구 중구 국채보상운동기념관에서 열린 100명 정원의 문화가 있는 날 프로그램에 10여 명의 참석자들이 자리에 앉아 있다. 대구=장영훈 기자 jang@donga.com
○ 참여 부족에 부실 운영 잇달아

이날 오후 7시경 대구 중구 국채보상운동기념관 기획전시실에선 문화가 있는 날 행사로 ‘대구의 근대 음악’을 주제로 인문학 강좌가 열렸다. 수용인원 100명인 이곳에 참석한 시민은 10여 명에 그쳐 썰렁한 분위기였다. 평일에 시행되다 보니 참여폭을 넓히고자 늦은 저녁에 프로그램을 마련했지만 일반인들이 관심 있을 주제가 아니어서인지 참여율이 저조했다.

대전 동구 가오도서관과 용운도서관 등은 문화가 있는 날 프로그램으로 오후 10시까지 야간 운영한다고 소개했지만 이날만 특별히 연장하는 것이 아니다. 도서관 관계자는 “문화가 있는 날뿐 아니라 공공도서관은 원래 매주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야간 운영한다”고 말했다. 한 지역 문예회관의 관계자는 “문화가 있는 날에 동참하지 않으면 나중에 정부 사업비 등을 신청할 때 불이익이 있어 형식적으로라도 참여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 ‘눈높이’ 고려한 프로그램 없어

지방에서 문화가 있는 날에 자체 운영할 프로그램과 문화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현장 불만이 커지자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는 문화가 있는 날을 위한 특별 기획프로그램 ‘더 하우스 콘서트’를 기획해 운영하고 있다. 한문련 관계자는 “지난해의 경우 클래식 기획사 1곳을 선정해 회당 200만 원의 예산을 들여 300회가량 진행했다”고 전했다. 올해도 이를 위해 35억여 원의 예산을 책정했다.

하지만 멘델스존 피아노 3중주, 금관악기 5중주 같은 프로그램이 지역민 정서와 동떨어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지역 문예회관 관계자는 “농촌 지역의 경우 주민 대부분이 노인들인데 클래식 공연보다 대중적인 문화공연을 원해 관객 만족도가 높지 않다”며 “형식적인 행사보다 지역의 특성을 고려한 프로그램을 짜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전=김지영 kimjy@donga.com / 광주=이형주 / 대구=장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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