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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주제는 ‘정직’]<40>서울 부정승차 하루 88건 적발
지난달 말 서울 동작구의 한 지하철역. 퇴근시간 지하철에서 쏟아져 나온 승객들이 개찰구에서 교통카드를 찍을 때마다 삑삑 소리가 연거푸 울린다. 역무원 박모 대리의 시선도 바빠진다. 그때 한 개찰구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65세 이상 노인이 무임승차할 수 있는 실버카드를 사용했다는 표시다. 그런데 실버카드를 사용한 승객은 40대 정도인 남성이었다.
박 대리는 남자에게 방금 사용한 카드를 보여 달라고 요청했다. 남자가 내민 카드는 일반 교통카드였지만 확인 결과 방금 사용한 것은 아니었다. 박 대리가 “이 카드가 아니라 방금 노인용 카드를 사용하신 것 같다”고 말하자 남자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증거 있느냐”며 소리를 높이던 남자는 욕설까지 내뱉었다. 박 대리는 남자를 진정시킨 뒤 폐쇄회로(CC)TV에 녹화된 증거 영상을 보여줬다. 실버카드를 사용하는 모습이 찍힌 영상에 남자는 할 말을 잃었다. 박 대리는 “부정승차가 적발돼도 발뺌을 하는 승객이 많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지하철역 현장 근무자들이 말하는 부정승차 방법은 천태만상이다. 출퇴근 시간대에는 앞사람이 교통카드를 찍고 개찰구를 나갈 때 바짝 붙어서 나가는 ‘얌체형’이 많다. 간절한 표정으로 화장실이 급하다며 잠시 개찰구를 열어달라고 하고서는 직원이 개찰구를 열자마자 줄행랑을 치는 ‘연기형’도 있다.
장년층에는 겉보기로 노인인지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을 이용해 배우자나 친척의 실버카드를 사용하는 ‘노안(老顔)형’이 많다. 개찰구를 뛰어넘거나 당당히 비상 개찰구를 통해 들어가는 ‘막무가내형’도 여전히 적지 않다.
지난해 서울 지하철의 부정승차 적발 건수는 1∼4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메트로에서 1만4538건, 5∼8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도시철도공사에서 1만7570건에 이른다. 두 기관을 합하면 매일 88건 정도의 부정승차를 적발하는 셈이다. 1∼8호선에서 부정승차 부가금으로 지난해에만 11억 원을 걷었지만 적발되지 않은 부정승차로 인한 피해는 이 액수를 훨씬 뛰어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단속 인력이 부족해 실제 이뤄지는 부정승차에 비해 적발 건수가 극히 미미하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부정승차는 다른 승객들에게 ‘나도 한번 해볼까’라는 생각을 심어주기도 한다. 대학생 손모 씨는 “교통카드를 깜박해서 집까지 돌아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비상 개찰구로 그냥 들어가는 사람을 보고 따라 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누적된 부정승차로 인한 지하철 운영 재정 누수는 운임 상승 등 전체 시민들에게 피해로 돌아갈 수 있다. 서울도시철도공사 관계자는 “단속으로는 부정승차를 막는 데 한계가 있다. 시민들의 성숙한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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