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59)은 10일 국회 심의 과정에서 사실상 누더기가 된 ‘김영란법’의 문제점을 비교적 소상히 밝혔다. 대법관 출신인 김 전 위원장은 쟁점별 설명과 관련 판례까지 곁들인 A4용지 8쪽 분량의 자료까지 배포하며 당초 원안(국민권익위원장 재직 시절 정부 입법예고안)의 취지를 설명했다. 국회를 통과한 법안이 문제는 있지만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부패문화와 결별할 수 있는 단초가 마련된 만큼 일단 시행하고 미비점은 차차 고쳐 가자는 취지였다.
김 전 위원장이 당초 정부 원안에서 빠진 내용 중 가장 아쉬워하는 부분은 ‘이해충돌 방지’ 조항이었다. 공직자가 본인이나 가족 등의 이해와 관련된 업무는 맡지 않게 한다는 내용이다. 이 조항은 △부정청탁 금지 △금품 등 수수 금지와 함께 정부 원안의 3가지 골격 중 하나였다. 하지만 법 적용 범위가 지나치게 넓고 직업 선택의 자유 침해 우려가 일면서 끝내 제외됐다. 김 전 위원장은 “가장 비중이 큰 ‘이해충돌 방지’ 분야가 통째로 빠진 점에서 ‘반쪽 법안’”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100만 원 이하의 금품 수수 시에는 ‘직무 관련성’이 있어야 처벌한다는 단서 조항이 원안에는 없었지만 국회에서 포함시킨 부분에 대해선 “현행법상 뇌물죄로 처벌할 수 있는 행위도 과태료만 부과하겠다는 것인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국회가 법체계상 논리적 흠결을 따져보지도 않고 졸속입법을 했다는 점을 꼬집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도 100만 원 이하 금품 수수 시 증거가 다소 부족한 사안을 예로 들며 “뇌물 혐의에 추가로 김영란법을 적용해 기소하면 과태료 처분을 받아낼 수 있다”며 통과된 법안이 현행법의 빈틈을 일정 부분 보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100만 원 초과 금품 수수 시 직무 관련성을 따지지 않고 처벌토록 한 조항에 대해선 “‘사회 상규에 따라 허용되는 금품’ 등 예외조항이 있고, 판례로 ‘사회 상규’에 대한 개념을 축적할 수 있다. 김영란법은 쉽게 표현하면 ‘더치페이법’으로 각자 자기 것을 자기가 계산하자는 취지”라며 위헌 논란을 일축했다.
적용 대상이 공직자 외에 언론사나 사립학교 교원 및 임직원 등으로 확대된 것과 관련해 “뜻밖에 국회에서 언론과 사립학교 분야를 추가해 깜짝 놀랐다”며 “위헌이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언론사에 대한 수사 착수 시 사전 통보나 충분한 소명을 하도록 하는 등 특단의 조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위헌 소지에 대해선 적극 반박했다. 배우자의 금품 수수 사실을 알았을 때 의무적으로 신고토록 한 조항이 ‘불고지죄’나 ‘연좌제 금지’에 저촉된다는 지적에 대해 “배우자의 처벌을 전제로 하는 ‘불고지죄’나 배우자의 죄책으로 본인이 불이익을 보는 ‘연좌제’와 관련이 없다”며 “김영란법은 공무원 등 공직자를 보호하기 위한 규정”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배우자나 선거사무장 등의 선거법 위반도 당선자의 선거법 위반에 준할 정도로 엄히 처벌하는 현행 공직선거법 규정을 놓고 ‘연좌제 피해 논란이 일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특정인에 대한 표적수사 가능성이 대폭 확대돼 ‘경찰·검찰 공화국’이 될 거라는 우려에 대해 “경찰이 단서나 제보도 없이 수사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검찰 출신 국회의원이 ‘모두가 수사기관에 노출된다’고 지적했는데, 당신(경찰이나 검찰)들이 정말 그렇게 수사해왔다면 오히려 그 부분을 개혁해야 한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 전 위원장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경찰이나 검찰 등의 내사나 수사 착수 경위는 수면 위로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는 만큼 망신주기식 수사로 인한 피해자가 양산될 거라는 우려는 가라앉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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