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분 인사말조차 안된다니… 이게 무슨 경선입니까”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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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憧憬 동경 이종찬 회고록]〈29〉경선의 끝

민자당 경선 초반인 1992년 4월 30일, 노태우 대통령은 경선 출마자인 김영삼 대표 최고위원과 이종찬 의원을 청와대로 초청해 
‘공정과 완주’를 당부했다. 하지만 경선 과정은 불공정했고, 이종찬은 끝내 거부하고 만다. 노 대통령은 훗날 회고록에서 “수틀리면
 누군들 혼을 내지 못할까! 눈을 부릅뜨고 화를 내는 것쯤이야 얼마나 쉬운 일인가! 하지만 민주주의를 위해 참고, 용서하고, 
기다려야 한다고 믿었다”며 이종찬을 비난했다. 동아일보DB
민자당 경선 초반인 1992년 4월 30일, 노태우 대통령은 경선 출마자인 김영삼 대표 최고위원과 이종찬 의원을 청와대로 초청해 ‘공정과 완주’를 당부했다. 하지만 경선 과정은 불공정했고, 이종찬은 끝내 거부하고 만다. 노 대통령은 훗날 회고록에서 “수틀리면 누군들 혼을 내지 못할까! 눈을 부릅뜨고 화를 내는 것쯤이야 얼마나 쉬운 일인가! 하지만 민주주의를 위해 참고, 용서하고, 기다려야 한다고 믿었다”며 이종찬을 비난했다. 동아일보DB
1992년 4월 30일 청와대에서 민자당 최고위원과 경선출마자들을 오찬에 초청했다. 출발하기에 앞서 장경우 의원은 나에게 청와대에 손주환 정무수석이 있는 한 공정한 경선은 어렵다고 보고했다. 그가 박태준 최고위원의 불출마선언 이후 사태를 관망하던 민정계 의원들에게 일일이 전화해 ‘YS(김영삼)를 지지하라’고 종용했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노태우 대통령은 특유의 웃음으로 적당히 넘길 태세였다. 그때 내가 말을 꺼냈다.

“각하, 우리 정당사에 여당이 경선을 한다는 것 자체가 신선한 충격을 줄 쾌거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작금 옥에 티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특히 청와대 내에서 각하를 모시는 측근들이 경선에 개입하는 것은 자칫 이 경선이 연극이라는 평가를 받기 쉽습니다.”

YS는 불쾌한 표정이 역력했고, JP(김종필)는 좋은 분위기를 깨고 있다는 그런 표정이고, 박태준은 할 말을 한다는 얼굴이었다. 당황한 것은 대통령 자신이었다.

며칠 뒤 이상연 안기부장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각하께서 많이 걱정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경선을 잘 치러서 피차 금이 가지 않도록 해야 하지 않겠어요?”

“경선을 경선답게 해야 누가 후보가 되더라도 본선에서 이길 것 아닙니까? 지금은 김영삼 씨가 모든 점에서 유리합니다. 그러면 나 하나 체면 살려주는 것이 뭐 그리 어렵습니까? 같이 연설하자, 정견발표하자는 게 뭐가 어렵습니까? 그쪽 사람들이 자꾸 ‘노심(盧心)’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면 숫제 지명하는 것이 떳떳하지 않아요?”

내가 퍼부어댔다. 하지만 이상연은 노련했다.

“각하께서 정무수석도 중립적인 사람으로 갈겠다고 합니다. 그러니 이제 조용한 가운데 축제 분위기로 전당대회를 마치도록 노력합시다.”

5월 6일 노 대통령은 손주환의 사표를 수리하고 후임에 김중권 국회 법사위원장을 임명했다. 그는 내가 당 사무총장일 때 사무차장으로 나를 보좌했던 사이다. 우리 캠프에서는 환영했다.

그러나 경선 분위기는 더욱 경직되어 갔다. 몸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하루는 박주선 의원이 팸플릿을 디자인해 주겠다고 가지고 갔는데 소식이 없었다. 알아봤더니 안기부에서 그에게 압력을 가하는 바람에 종적을 감췄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중립을 지키던 김복동 선배도 김영삼 추대위원회를 방문하고 지지를 표시했다. 나는 김복동의 행동이 바로 “노심의 종착역”이라고 비꼬았다.

5월 16일 D-4일. 청와대에서 연락이 왔다. 강원도 연설회를 끝내고 올라오니 노 대통령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간 수고했네. 여러 가지 잡음이 있었지만 나는 이 의원의 입장을 이해하네.” 웃는 낯에 무슨 얘기를 하겠는가.

“경선기간에 심려를 끼친 점에 대해 송구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경선이 잘 치러지면 대선에서 유리하게 된다는 점을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나는 당초 이 의원이 선전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는데 그래도 정치적 저력이 있어서 많은 호응을 받고 있는 것으로 듣고 있네. 이제 마지막 시점이 되었네. 경선을 포기하지 말게.”

“모양만 갖추는 그런 경선으로는 저 개인도 죽고, 당도 죽습니다. 그래서 오늘까지 싸워 왔습니다. 이제 최종적으로 한 가지만 배려해주시면 이기든 지든 경선결과에 승복하겠습니다.”

“그게 무엇인가?”

“전당대회에서 정견발표 연설회를 갖자는 것을 YS 측은 거부했습니다. 정견발표는 하지 않더라도 5분간 인사말이라도 하게 해주십시오. 아무려면 그 자리에서 제가 YS를 비난하겠습니까?”

노 대통령은 말문이 막혔는지 잠시 골똘히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것만 보장되면 끝까지 경선에 임하겠는가?”

“네, 약속하겠습니다.”

“알았네. 내가 당에 지시하겠네.”

“감사합니다.”

노 대통령은 손을 내밀어 나와 굳게 악수했다. 그게 그분이 건강할 때 내가 마지막으로 나눈 인사가 될 줄은 몰랐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일찍 일어나 아내에게 말했다.

“김영삼이란 사람에게 모두가 포로로 잡혀 있는 꼴이 참으로 처참하게 느껴지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당신들은 정치 초단도 못 되고, 그 사람은 9단이에요.”

나는 북아현동 박태준 최고위원 댁으로 먼저 갔다.

“그동안 너무 많은 것을 저에게 베풀어 주셨습니다. 오늘이 중대한 결심을 해야 할 시점인 것 같습니다.”

광화문 경선 사무실에 도착하니 장경우 의원이 심각한 얼굴로 “상도동에서 거부했답니다”라고 알렸다.

“5분간 인사말도 못한다는 말입니까?” 누군가 그렇게 말했다.

“한마디로 거부, 이게 그분의 반응이라 하더군요.”

“각하에게 보고했답니까?” 내가 물었다.

“각하인들 대책이 없겠지요.”

우리 모두는 어안이 벙벙했다. 1992년 민자당 대통령후보 경선은 우리 현대사에서 처음으로 집권당이 경선으로 후보를 선출하는 의미 있는 사변이었다. 나는 그런 경선을 거부했다. 그 뒤 1997년 이인제 후보가 ‘경선 이후’에, 2007년에는 손학규 후보가 ‘경선 이전’에 당을 떠났다. ‘경선 불복’이라는 나쁜 전통이 나의 경선 거부와 탈당에서 비롯되었다는 비판이 있는 것을 잘 안다. 그런 비판을 받아들인다.  
▼ 김옥숙의 한마디 “그럼 李의원도 盧心을 파세요” ▼

노태우의 가족회의서 결정난 차기 대권


경선 도중 이종찬은 김복동 의원을 은밀히 만났다. 노태우 대통령의 처남이지만, 이종찬과도 호형호제하는 선배였다.

그런데 김복동의 첫마디가 좀 이상했다.

“이봐, 아우! 이제 이쯤 하고 중지하는 것이 어떻겠나?”

“선배님, 이제 시작입니다. 중지하면 우리 정치가 무슨 꼴이 되겠습니까?”

“아냐, 결론은 나 있어. 더이상 끌고 가도 결과는 같아. 내 말은 아우가 헛고생하는 것 같아서 하는 이야기야.”

“결론이 났다니요?”

“이런 이야기를 듣고 오해하지 말게. 청와대에서 가족회의를 했는데 이번에는 김영삼이라고 모두 합의했네.”

이종찬은 발끈했다.

“아니, 선배님! 그게 무슨 말입니까? 가족회의에서 대한민국의 운명을 결정합니까?”

김복동으로서는 마음을 담은 조언이었지만, 이종찬은 그런 마음까지 헤아릴 여유가 없었다.

“아우가 그렇게 말하면 나로서는 할 말이 없군.”

김복동은 벌떡 일어나 나가버렸다. 이종찬은 망연자실했다.

아내 윤장순이 이종찬의 그런 분위기를 눈치챘다. 1992년 5월 11일 광주 연설회가 열리는 날, 윤장순은 청와대로 김옥숙 여사를 찾아갔다. 이종찬에겐 귀띔도 하지 않았다. 이 대목은 ‘이종찬 회고록’ 14회(2014년 11월 29일자) 보조박스 ‘술에 물탄 듯…노태우 스타일’에서 짤막하게 소개했지만 좀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윤장순은 김옥숙에게 간곡하게 호소했다.

“각하께서 만약 꼭 김영삼 씨를 후계자로 시키고 싶다면 영부인께서 솔직하게 저에게 말씀해주세요. 우리는 꼭 대통령 하겠다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오늘이라도 제가 이 의원을 졸라서 후퇴하겠습니다.”

“아니에요. 경선이 과열된다고들 하지만 우리는 중립입니다. 금진호 장관이 김영삼 씨 측 행사에 나가기 때문에 각하가 오해받는다 해서 내가 당분간 해외 나가 있으라고 권했어요.”

“그것만이 아닙니다. 김윤환 의원이 ‘이미 노심(盧心)은 결정되었다. 이번 경선은 축제로 끝내야 한다’고 말하고 다닌다고 합니다. 김 의원은 누가 보더라도 각하의 측근 아닙니까? 그러니 이 판에 끼어서 우리가 욕먹을 일이 없지 않겠어요? 영부인께서 저에게만 말씀하세요. 그러면 우리는 미련 없이 중단하겠습니다.”

“그러면 안 됩니다. 정말로 나는 중립이에요.”

그 말에 윤장순은 속내까지 털어놓고 말았다.

“사실, 김영삼 씨를 믿지 마세요. 김영삼 씨가 설령 각하의 사후를 보장하겠다고 해도 그에게는 오늘까지 지내온 동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김영삼 씨를 그대로 놔두지 않을 거예요.”

김옥숙은 잠깐 심각해졌다.

“일가들 가운데 김영삼 씨는 믿을 수 있다고 하는 분이 있어요. 그런데 나는 갈피를 잡을 수 없어요.”

“우리는 달라요. 김영삼 씨와는 성장배경이 다릅니다. 우리는 각하를 배반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윤장순이 마지막으로 들은 말은 이 한마디뿐이었다.

“그럼 이 의원도 노심을 파세요.”

김창혁 전문기자 chang@donga.com
#경선#노태우#대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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