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정 수준의 임금을 인상해 소비가 회복될 수 있도록 힘을 모아 달라.”(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임금은 한 번 오르면 내려가지 않는 ‘하방 경직성’이 크기 때문에 상당히 많은 고려와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13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대한상의회관에서 열린 ‘경제장관-경제5단체장 간담회’에서 정부와 재계가 임금 인상 문제를 놓고 신경전을 펼쳤다. 정부가 이날 다시 한번 임금 인상을 촉구하며 기업들을 압박했지만 재계는 기업 경쟁력 약화를 이유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맞섰다. 재계가 반발하자 정부는 “임금 인상은 개별 기업의 임금협상 과정에서 자율적으로 결정될 사안이라는 것이 원칙”이라며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날 최 부총리는 간담회 인사말을 통해 “기업들이 적정 수준의 임금 인상과 청년 고용, 투자 활성화에 적극 동참해 달라”며 “대기업들은 당장 임금 인상이 어렵다면 협력업체에 적정 수준의 납품단가를 지급하는 방법 등으로 자금이 중소 협력업체에 흘러들어 갈 수 있도록 협조해 달라”고 요청했다. 최 부총리가 임금 인상의 필요성을 거론한 것은 이달 들어서만 네 번째다.
그러자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은 임금 인상을 추진하려는 정부 입장에 공감하면서도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맞섰다. 박 회장은 “한국은 미국, 일본과 달리 내수시장이 좁아 소비 촉진도 중요하지만 기업들의 국제경쟁력이 약화되지 않고 수출이 둔화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며 “최저임금 인상 역시 경제구조, 소득구조를 고려해서 장기적 마스터플랜을 갖고 추진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또 “최저임금이 오르면 기업들의 임금을 전반적으로 높여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며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부작용을 없앨 수 있는 정책 수단이 동반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다른 경제단체장들도 임금 인상이 기업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장은 “올해 경제전망도 밝지 않다”며 “특히 통상임금 범위 확대와 정년 60세 연장으로 기업들의 임금 부담이 커졌다”고 말했다.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장 역시 “고용과 임금은 ‘트레이드오프(trade off·상충)’ 관계가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용 창출과 임금 인상 ‘두 마리 토끼’를 한번에 잡을 수 없다는 의미로 사실상 임금 인상에 반대한 것이다.
정은보 기재부 차관보는 간담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최 부총리가 언급한) 적정 수준의 임금 인상은 결국 민간이 자율적으로 결정할 문제”라고 설명했다. 기재부 안팎에서는 그동안 “임금 인상을 통해 가계소비를 촉진해야 한다”며 임금 인상 필요성을 강하게 주장하던 정부가 재계가 강력히 반발하자 기존 입장에서 한발 후퇴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한편 이날 간담회에서 최 부총리는 내수 활성화를 위해 경제단체장들과 골프 회동을 갖기로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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