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남한에 대하여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악담과 저주를 쏟아내고 있다. 이런 말투는 다시는 만나지 않을 사람에게도 하기 어려운 표현이다. 어쩌다 북한이 이처럼 천박한 나라가 되었는지 안타깝다.
젊은 김정은은 최고 존엄이며 또한 위대한 지도자라며 온갖 극존칭의 찬사를 하고 있다. 자기들의 최고 존엄에 대한 예의는 지키라고 하면서 남의 나라 지도자에게는 온갖 욕설을 퍼붓고 있으니 이런 무례에 대하여 어찌 할꼬 싶다.
북한은 정나미 떨어지는 집단이지만 그들은 우리의 동족이고 바로 우리의 가장 가까운 이웃이다. 그들이 아무리 못된 짓을 하고 있더라도 상종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형편이다. 그러면 북한의 긍정적인 면은 없을까?
북한 음악은 모두 아는 대로 김일성 왕조 우상화 작업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음악이다. 그러니 모두모두 버려야 할 것인가?
남한의 전통음악계가 북한 가얏고(가야금)를 처음 접한 것은 1994년이다. 평양무용음악대학에서 가얏고를 전공한 총련 계통의 재일교포 문양숙이 1994년 중앙대로 국악을 배우겠다고 유학을 왔다. 그는 북한의 개량 가얏고로 아리랑을 연주하여 주위를 놀라게 하였다. 남한의 전통 가얏고는 곰삭은 진한 맛을 내는 데 비하여 21현 가얏고는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화사하였다. 북한의 아리랑은 화음을 사용하여 기존의 가얏고 음악에 비해 산뜻하여 젊은 연주자들의 마음을 휘어잡았다. 남한에서도 그동안 가얏고를 개량해 왔지만 문양숙의 음악은 충격적이었다.
이 음악을 들은 남한 음악계는 둘로 갈렸다. “이런 음악이야 피아노로 연주하면 더 효과적일 터인데, 무엇하러 가얏고로 연주하나”라는 비판이 대세였다. 그러나 젊은층은 “가얏고로 이런 효과를 낼 수 있다니!” 하는 반응을 보였다. 서양음악을 바탕으로 한 음악이지만 명주실의 따뜻한 정감이 묘하게 다가왔던 것이다. 문양숙은 학생으로 한국에 왔지만 단박에 개량 가얏고 선생이 되었다.
이제 우리나라에서 가얏고 연주자라면서 개량 가얏고를 연주할 수 없다면 가얏고 연주자 축에 낄 수 없다. 국악전문연주단체인 KBS국악관현악단이나 국립국악관현악단도 개량 가얏고를 채용하여 이제는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북한 음악은 ‘아리랑’ 외에도 ‘초소의 봄’ 등은 공식 연주회에서 즐겨 연주될 정도로 인기가 있다. 또한 작곡가들도 개량 가얏고를 위한 작품을 많이 쓰고 있다. 이런 현상을 보며 음악은 평론가나 음악학자가 선도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 대중이 이끄는 것이라는 당연하지만 본질적인 대답을 확인하였다.
북한은 서양식 3화음을 채용하느라 우리나라 고유의 음정 체계를 버리고 서양음악의 체계를 채용하고, 발성은 전통적인 창법을 버리고 맑고 고운 서양식 발성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서양식 표현을 채용하려고 한국음악 고유의 시김새를 버렸다. 이것은 북한에서 그토록 부르짖는 ‘주체사상’과는 반대로 전통 방식을 버리고 서양음악 쪽으로 가까이 간 것이다.
그리고 선비음악은 부르주아 음악이라고 버리고 판소리 같은 음악은 지배계급에 봉사한 음악이었다고 이 또한 버렸다. 판소리를 들은 김일성이 “K소리 집어 쳐라!”고 소리쳤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일반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민요만 남았다.
북한 음악의 장점은 일반 대중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음악이라는 점이다. 그들은 단순하고 경쾌하고 때로는 장중한 성격의 음악을 권장하였다. 특히 악기 개량으로 서양악기와 잘 어울리게 되었다. 남한 전통음악계는 전통을 비교적 잘 보존하고 있다. 북한은 전통에서 벗어났지만 악기 개량에 힘써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전통은 지켰지만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진 남한의 음악, 악기 개량 등으로 대중성을 획득하였지만 정통성을 망실한 북한 음악, 이 둘이 만나면 시너지 효과를 상당히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남북한이 만나 상호 보완할 수 있는 날은 언제가 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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