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서울국제마라톤대회 겸 제86회 동아마라톤대회에서 우승한 윌슨 로야나에 에루페(27·케냐)는 한국과 인연이 깊다.
그는 2011년 10월 생애 두 번째 풀코스이자 난생처음 출전한 국제 대회인 동아일보 경주국제마라톤대회에서 2시간9분23초로 정상에 올랐다. 2012 서울국제마라톤대회 겸 제83회 동아마라톤대회에서는 역대 국내 대회 최고 기록인 2시간5분37초로 우승하며 단번에 세계적인 선수로 떠올랐다. 그해 가을 열린 경주국제마라톤대회에서도 우승해 그는 한국에서 열린 3개의 국제 대회에서 모조리 금메달을 따냈다. 이번 대회까지 제패한 그는 한국 대회 4번 출전, 4번 우승이라는 진기록을 보유하게 됐다.
그를 세계적인 마라토너로 키운 스승도 한국인이다. 2007년부터 케냐 엘도레트와 나이로비에 훈련 캠프를 차린 오창석 백석대 스포츠과학부 교수(53)는 ‘흙 속의 진주’였던 에루페를 발굴해 체계적으로 훈련시켰다.
에루페는 내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 태극마크를 달고 출전할 가능성이 작지 않다. 대한육상경기연맹 차원에서 그의 귀화를 추진하고 있고, 그 역시 ‘진짜 한국인’이 되려는 마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귀화하면 마라톤 선수로는 ‘1호 귀화 선수’가 된다.
2012년 동아마라톤에서 최고 성적을 올렸을 때 이미 육상연맹에서는 그의 귀화 작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도핑이라는 변수에 막혀 잠시 중단했었다. 에루페는 2012년 말 말라리아 예방 접종 주사를 맞았는데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의 불시 도핑 테스트에서 양성 반응이 나왔다. 그는 IAAF에 항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2013년 초부터 올 초까지 2년간 출전 정지 처분을 받았다. 에루페는 “정말 억울했고, 그래서 더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가족과 함께 농사를 지으며 틈틈이 훈련했다”고 했다. 2년간의 공백이 무색하게 그는 이번 대회에서 챔피언에 오르며 명예를 회복했다.
그의 징계가 풀리기 1년 전부터 많은 마라톤 에이전시 회사들은 거액을 제시하며 그를 스카우트하려 했다. 하지만 에루페는 오 교수와의 의리, 한국과의 인연을 생각하며 모든 제안을 거절했다. 복귀전으로 이번 대회를 택한 것도 한국 국가대표가 되고 싶은 마음을 보여주고 싶어서였다.
최경열 육상연맹 전무는 “이봉주가 은퇴한 후 국제 경쟁력을 가진 선수가 나오지 않고 있다. 그의 귀화는 한국 육상 발전에 좋은 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케냐 국가대표로 뽑힌 적이 없는 그가 케냐 국적을 포기하고 한국 국적을 취득하면 1년 후부터 한국 대표로 올림픽 등 국제대회에 나갈 수 있다. 운동선수가 귀화하려면 대한체육회의 추천을 받은 뒤 법무부 국적심의위원회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
2012년 동아마라톤에서 에루페가 기록한 2시간5분37초는 역대 전 세계 모든 선수를 통틀어 43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우승한 스티븐 키프로티치(우간다)의 기록이 2시간8분1초임을 감안하면 내년에 열리는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그가 메달을 딸 가능성은 큰 편이다.
에루페는 “한국에서 뛰는 게 좋다. 날씨도 좋고 모든 게 좋다. 내 인생의 목표는 올림픽과 세계선수권대회에 나가 우승하는 것이다. (귀화 문제에) 흥미를 갖고 있다. 대한육상경기연맹과 협의해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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