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이 만난 사람/방형남]“사드도, AIIB도 절대 주변국에 휘둘리지 않고 판단할 것”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16일 03시 00분


윤병세 외교부 장관

《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체계 배치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가입을 놓고 한국 외교가 격랑에 휩싸였다. 사드는 미국이, AIIB는 중국이 주도한다. 한국 외교의 주요 현안인 북핵과 한일관계 정상화는 박근혜 정부 출범 2년이 지나도록 진전이 없다. 역학관계 조정에 돌입한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한국이 가야 할 방향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도 제기되고 있다. “국내 정책은 내부 실패로 끝날 뿐이지만 외교 실패는 우리를 죽일 수도 있다”는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경구가 떠오르는 상황이다. 14일 윤병세 외교부장관을 만나 한국 외교의 고민과 해법을 물었다. 그는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2년 넘게 재임하고 있는 최장수 장관 5명 중 한 명이다. 외교 안보분야 각료 가운데는 유일하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14일 2시간 동안의 인터뷰에서 여러 차례 “국익”을 강조했다. 여기에 외교부 발표자료의 따옴표, 마침표까지 손수 고칠 만큼 디테일을 중시하고 감정 표현을 자제한다는 점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공통점이 많다. 그게 윤 장관의 장수비결 아닐까. 박경모 기자  momo@donga.com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14일 2시간 동안의 인터뷰에서 여러 차례 “국익”을 강조했다. 여기에 외교부 발표자료의 따옴표, 마침표까지 손수 고칠 만큼 디테일을 중시하고 감정 표현을 자제한다는 점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공통점이 많다. 그게 윤 장관의 장수비결 아닐까. 박경모 기자 momo@donga.com
방형남 논설위원
방형남 논설위원
“中, 사드를 현안 의제화 한적 없어”

―사드와 AIIB를 놓고 현 정부의 외교정책에 대한 비판이 나온다. 노재봉 전 총리는 최근 대담집 ‘정치학적 대화’에서 “한국이 한미일 사이를 이간시키려는 중국의 쐐기 박기 전략에 휘둘린다”며 “중국 눈치 보느라고 한미 군사협조가 삐걱거린다”고 했다.

“밖에서는 장면 단위로 판단할지 몰라도 외교 당국자는 1년, 2년, 5년의 시간 개념으로 본다. 외교를 스냅 샷을 찍어 판단하면서 풀 수 있는 단계는 지났다. 우리는 현안마다 중심을 잃지 않고 종합적으로 국익 차원에서 해결하려고 한다. 사드나 AIIB는 우리가 해결하지 못할 어려운 문제라고 보지 않는다.”

윤 장관은 노태우 정부에서 총리를 지낸 노 씨의 비판에 수긍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일각에서 과거 우리가 힘이 없을 때처럼 패배주의를 떠올리는 것 같아 아쉽다. 더 심하게 말하면 사대주의적 시각도 있는 것 같다. 우리가 중국의 눈치를 봐야 하고, 미국의 말을 따라야 하는 것으로 보는 시각이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사드 문제는 미국에서 공식적으로 주한미군에 배치하는 문제를 요청하게 되면 정부에서 종합적인 국익 차원에서 균형감각을 갖고 판단할 것이다. 한국은 글로벌화 전략을 통해 경제성장을 했다. AIIB의 방향성에는 이견이 없다. 다만 어떤 여건에서 어떤 타이밍에 가입 여부를 결정할지, 국익에 맞는 것인지, 지역 협력에 도움이 되는지를 따져야 한다. 어느 한쪽의 눈치를 본다는 말이 절대로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

―사드는 이미 주한 중국대사와 중국 국방부장이 반대의사를 표시해서 한중 현안이 되지 않았는가.

“분명하게 말하지만 중국이 사드를 현안으로 의제화해서 제기한 적이 없다. 한국에서 거론될 때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얘기하거나 주한 중국대사가 비공식적으로 언급했을 뿐이다. 공식화 단계가 오면 분명히 중국과도 얘기해야 한다. 논란에 앞서 사드가 거론되는 근원적인 원인이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절대 주변국에 휘둘리지 않고 판단할 것이다.”

―4강 사이에 끼어 있는 한국의 숙명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강대국 특히 미중 사이에서 한국은 어떤 외교 전략을 갖고 대응해야 하나. 구체적 전략이 있는가.

“국내 일각에서 안보 외교문제를 제기할 때 마치 냉전시대로 돌아가서 한쪽 편을 들고 마음 편하게 지내자고 하는 듯한 시각이 있다.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다. 박근혜 정부는 한미관계 한중관계를 최선으로 만들었다. 우리뿐 아니라 상대방이 그렇게 인정한다. 통일에 대한 지지를 얻으려면 독일처럼 모든 나라와 잘 지내야 한다. 모든 나라와 네트워킹하고 친분을 유지해야 하는데 어느 한쪽에 붙어서 이견과 대립을 불사하자는 것이 조언이라면 받아들이기 어렵다. 방공식별구역(KADIZ) 재조정은 강대국 사이에서 우리 국익을 지킨 좋은 사례다.”

“北외상과 언제 어디서든 대화 용의”

―독일 통일 과정에 헬무트 콜 총리가 특별한 역할을 했지만 디트리히 겐셔 외교장관의 통일외교도 걸출했다. 대통령의 통일정책이 성공하려면 윤 장관의 통일외교가 뒷받침돼야 한다. 북한 이수용 외무상을 만나 ‘통 큰’ 통일외교를 시도할 생각은 없나.

“그런 것을 염두에 두면서 지난해 미얀마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회의 때 이 외무상과 접촉했다. 일부러 연단까지 올라가서 잠깐이지만 만났다. 남북 간 외교장관회담은 항상 열려 있고 할 준비가 돼 있다. 다자무대든 양자무대든 어디서든 접촉할 준비가 돼 있다. 남북한의 주요 현안과 지역 현안, 글로벌 현안을 솔직하게 얘기하고 협력하고 싶다. 상대가 준비돼 있다면 싱가포르든 제네바든 뉴욕이든 서울이든 평양이든 다 좋다.”

―4월 반둥회의 60주년 행사 참석 등을 계기로 대화 제안을 하면 좋을 것 같은데….

“우리는 열려 있다. 올해 2, 3차례 만날 수 있는 다자 계기가 있다. 가능하면 활용하겠다.”

―한중일 외교장관회의가 이번 주말 서울에서 열린다. 2012년 5월 이후 중단된 한중일 정상회의가 다시 열릴 수 있을지, 한일 관계는 개선될지 궁금하다.

“한중일 3국 외교장관회의는 3국 정상회의 체제의 산하조직이다. 한중일 관계가 좋지 않을 때 아세안 정상회의에서 한중일이 따로 조찬모임을 하면서 시작됐다. 우리가 주도적으로 1년 동안 노력해서 외교장관회의가 성사됐다. 1차적으로 얻으려 하는 것은 손상된 3국 협력 체제 복원이다. 원래 취지대로 경제 지역안보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해와 협력을 강화하고 다변화하는 것이 목표다. 그렇게 되면 결과적으로 양자 문제 해결에 기여할 수 있게 된다.”

“한일관계, 역사와 현안 분리대응”

―박근혜 대통령은 3·1절 기념사에서 한일의 ‘미래 50년 동반자 관계’를 제안하면서도 위안부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외교장관들이 한중일 공통의 문제에서 진전을 이루면 위안부 문제 해결 가능성이 보이지 않아도 한중일 정상회의를 할 수 있다는 건가.

“다자(多者)와 양자(兩者) 문제를 가능하면 분리해 다루려고 한다. 유엔과 아세안 회의 등에 참석해야 하는데 일본 총리가 온다고 문제 삼을 수는 없지 않은가. 한일관계에서도 역사 문제와 다른 현안을 연계하지 않으려 한다. 3국 정상회의 재개를 독려하고 성사하기 위해 노력하겠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상이 취임 후 한국에 오는 것이 처음이기 때문에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어떤 메시지를 가지고 올지 관심이 크다. 우리는 어떤 제안을 할 것인가.

“박 대통령을 예방해 양국 관계나 지역문제에 대한 의견교환을 한다는 점에서 상당한 의미가 있는 방한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일본이 현안 해결을 위한 의미 있는 방향을 제시할 것으로 기대한다.”

―일본 외무성이 홈페이지에서 “한국과 자유와 민주주의, 시장경제 등의 기본적 가치를 공유한다”는 표현을 삭제한 사례는 한일관계가 정상 차원뿐 아니라 외교부 차원, 외교장관 차원에서도 악화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닌가.

“외무성은 역사문제에 대한 지도자의 생각을 반영해야 하기 때문에 그런 일이 발생했다고 본다. 하지만 일본이 그 이상의 특별한 의도를 가진 것 같지는 않다.”

윤 장관은 “한국이 지향하는 가치를 일본이 뻔히 알면서 뺐기 때문에 더 고약한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도 “우리가 듣기론 일본에서 그렇게 심각하게 판단하는 것 같지 않다”고 비켜갔다.

―4월 반둥회의, 5월 모스크바 2차대전 승전 행사, 9월 베이징 2차대전 승전행사에서 정상외교가 펼쳐진다. 어떤 전략으로 준비하고 있나.

“여론은 우리 대통령의 참석보다 북한 김정은의 참석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는 것 같다. 제 입장에서도, 정부 입장에서도 북한 지도자가 중요한 국제회의에 적극 참가해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고 외국 지도자와 만나 의견 교환하고 국제사회 분위기를 파악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반둥회의는 다음 달이고, 모스크바 행사도 두 달이 채 안 남았다. 김정은 참석이 변수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지금쯤 결정해야 할 시기가 아니냐.

“모스크바 행사는 일정을 포함해 여러 측면의 고려 상황이 있다. 다른 나라들처럼 우리도 장고 중이다. 4월 중에는 결정할 것이다.”

―일본 아베 신조 총리가 4월, 박 대통령이 6월,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이 9월 미국을 방문하는 일정도 한미중일 관계에 큰 변수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이 종전 70주년을 계기로 한중일의 화해를 위해 본격적으로 개입하는 것인가.

“그런 의미가 있다. 미국이 2월에 주요국 정상의 방문을 예고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미국의 분명한 아태전략을 부각시키기 위해 한중일을 포함해 인도네시아까지 4국 정상 방문을 예고했다. 동맹국과의 관계 심화, 중국과의 관계 촉진, 한중일 역사문제 갈등 해결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문제 해결의 계기로 삼겠다는 의지를 표시한 것이다. 특히 일한중을 연속적으로 초청하는 것은 종전 70주년이라는 시점에 미국이 주도적으로 화해의 장을 마련하겠다는 의지가 담겼다고 본다.”

“정상외교도 뉴 글로벌화 필요”

―박 대통령의 방문 준비도 잘해야 하지만 아베 총리의 방미에 대해서도 한미 간에 의견교환이 필요한 것 아닌가.

“당연히 의견교환을 하겠다. 미국은 미일동맹을 중시하면서도 역사문제에 대해서는 할 말을 했기 때문에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으로 예상한다. 미국에서 ‘일본 역사 수정의 끝은 미국을 전쟁범죄자로 만들려는 것’이라는 우려까지 나온다. 아베 총리의 방미가 역사문제를 청산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미국도 독려해야 한다. (일본은) ‘돈이 양심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대통령의 중동 순방이 ‘제2의 중동 붐’을 일으킬 수 있다는 긍정적 평가가 나온다. 다만 외교부가 골치 아픈 일보다 쉽게 점수를 딸 수 있는 정상외교에 몰두한다는 비판적 시각도 있는데….

“중동은 한국과 상생협력을 원하고 있다. 순방국 가운데 한 국가 정상은 박 대통령에게 ‘언제든 전화만 하면 모든 걸 해결해주겠다’고 말했다. 장관이 되면서 제일 비판적으로 봤던 것이 전통적 분야의 외교에 집중하는 관성이다. 세상이 바뀌고 모두 지역외교 글로벌외교에 매달리는데 우리는 북한 일본 강대국외교에만 치중했다. 외교 대상의 동심원 안쪽도 다뤄야 하지만 글로벌 문제가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뉴 글로벌 외교’가 필요하다. 그런 관점에서 정상외교를 준비한다.”

방형남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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