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공정거래위원회에 고발을 요청한 SK건설의 새만금 방수제 건설공사 담합 혐의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고 16일 밝혔다. 검찰의 고발 요청에 공정위가 반드시 응하도록 한 ‘의무 고발요청권’ 제도가 2013년 만들어진 후 검찰이 이를 행사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검찰은 앞으로 공정위가 ‘리니언시(자진신고자 감경제도)’를 적용해 고발하지 않은 업체에 대해서도 필요하면 고발요청권을 적극 행사할 방침이어서 기업의 불공정 거래 행위에 대한 검찰 수사의 틀이 바뀔 것으로 보인다.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세조사부(부장 한동훈)는 2010년 4월 새만금 방수제 건설공사에 입찰하며 경쟁업체와 담합해 투찰률을 조작한 혐의(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위반)로 SK건설에 대해 검찰총장 명의로 고발요청권을 행사했다. 2일 SK건설에 과징금 22억6400만 원과 시정명령만 부과했던 공정위는 검찰의 요청에 따라 12일 SK건설을 고발했다. 현행법상 공정거래법 위반 기업에 대한 고발권은 공정위만 갖고 있어 공정위 고발 없이는 기소할 수 없다.
검찰이 고발요청권을 공식 행사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1996년 검찰의 고발요청권 제도가 도입됐지만 활용 사례가 극히 드물었고 2013년 7월 검찰과 감사원 등이 고발을 요청하면 공정위가 의무적으로 이에 응하도록 관련법이 개정된 뒤에도 일선 지검장이나 수사 검사 수준의 비공식적 요청만 있었을 뿐 검찰총장 명의의 공식 고발요청권 행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공정위 조사 결과 새만금 방수제 건설공사 담합에는 SK건설 외에도 삼성물산과 대우건설 등 11개 업체가 가담했다. SK건설은 동진3공구(낙찰가 1038억 원)를 따냈고, 현대산업개발과 한라건설은 각각 동진5공구(1056억 원)와 만경5공구(746억 원)를 낙찰받았다. 공정위는 업체들에 각각 과징금 9억6000만∼34억5800만 원을 부과하고 형사 고발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검찰은 공정위의 과징금 처분 결정 이후 공정위 심의위원회의 의결서를 검토한 결과 SK건설에 대한 기소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거액의 경쟁 입찰에 ‘들러리’ 업체를 끌어들이는 등 담합을 주도했고, 공정위의 조사에 자진 협조하지 않았다는 이유다. 금강 살리기 사업(897억 원) 담합이 적발돼 지난해 11월 공정위의 고발에 따라 결국 기소된 계룡건설과 비교했을 때 SK건설을 기소하지 않는 것은 형평이 맞지 않다는 시각도 작용했다.
현대산업개발 등은 공정위 조사에 자진 협조한 점 등을 고려해 형사 책임을 면했지만, 검찰은 앞으로 유사 사건이 발생할 경우 리니언시의 혜택을 받은 업체일지라도 불공정 거래 행태의 심각성에 따라 고발을 요청할 방침이다. 올해 신설된 공정거래조세조사부가 공정위의 고발 면제 결정을 전반적으로 검토해 적정성을 따지겠다는 취지다.
검찰의 이런 결정에는 공소시효가 임박해 수사를 의뢰하는 등 공정위의 일부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겠다는 의지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새만금 방수제 담합 사건의 공소시효도 4월 25일로 기소 일정이 촉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요 불공정 거래 사건은 검찰이 공정거래법을 적용해 먼저 수사를 진행한 뒤 기소 직전 공정위에 고발을 요청하는 새로운 수사 방식도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