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 올리고 채용도 늘려라?… 엇박자 정책에 재계 당혹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18일 03시 00분


요즘 재계는 곤혹스럽다. 최근 정부가 잇달아 요구하는 각종 경제 활성화 대책들에 대한 불만이다.

약속했던 규제 완화는 이뤄지지 않은 채 오로지 기업 목줄을 죄는 ‘압박성’ 주문만 이어지고 있다는 게 기업들의 생각이다.

검찰의 전방위적인 기업수사에 대해서는 드러내놓고 반발은 못 하지만, 압박성 주문이 나오는 시기에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큰 부담을 느끼고 있다.

○ 앞뒤 안 맞는 경제 활성화 정책

기업들은 정부가 최근 주문한 정책 내용들이 서로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점에 가장 큰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현실적으로 임금을 올리면 채용은 자연스레 줄어들 수밖에 없지만 현 정부는 임금 인상과 신규 채용 확대를 동시에 주문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정년연장, 통상임금에 대한 압박과 법인세 증세 및 배당 확대, 투자 확대까지 동시에 요구하니 어느 장단에 발을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는 불만이 나온다.

A그룹 임원은 “기업들도 망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 지켜내야 하는 마지노선이라는 게 있는데 지금 정부는 서로 상반되는 정책들을 동시에 주문하니 4중고에 시달리는 기분”이라며 “하나만 주문해도 현재 여력상 제대로 시행하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털어놨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고용과 임금이 서로 ‘트레이드오프(trade off·상충)’ 관계에 있다는 건 경제학 교과서의 기본”이라며 “그런데도 정부가 내년 선거를 앞두고 여론만을 의식해 자충수를 두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경제단체 관계자 역시 “기업 입장에서 감내할 수 있는 개입이 있고 도저히 아니다 싶은 개입이 있는데 이번 임금 인상 요구는 후자에 가깝다”며 “최근 임금 인상 요구는 대단히 정치적으로 비친다”고 지적했다.

기업들은 한국의 경직된 고용문화 특징상 임금은 한번 올려놓으면 다시 내리기 어렵기 때문에 더 조심스럽다는 반응이다. B기업 관계자는 “통상임금과 정년연장 등 최근 불거진 각종 고용 비용 증대 이슈가 겹쳐 있기 때문에 단순히 임금만 인상하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 약속한 규제 개혁은 언제쯤

여전히 풀리지 않는 규제 개혁에 대한 볼멘소리도 나온다. 규제 개혁이라는 전제조건이 선행돼야 기업들도 자연스레 투자를 늘리고 신규 채용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실제 최근 동아일보가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국내 30대 기업(지난해 매출액 상위 기준)을 대상으로 가장 시급한 경제 활성화 대책을 물었을 때도 응답 기업 중 65.2%가 ‘규제 완화’를 꼽았다.

대한상공회의소 관계자는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규제를 반드시 개혁한다고 해서 기업들이 기대를 많이 했는데 최근 기류가 경제 논리보다는 정치 논리에 가까워지는 분위기라 실망이 크다”고 전했다.

기업들은 지난 총선과 대선 때부터 이어져 온 경제민주화 움직임에 발맞춰 정부의 주문에 상당 부분 발맞춰 왔지만 돌아온 혜택이 없다는 데에 대한 불만이 크다.

C그룹 관계자는 “정부가 계속 기업의 주리를 틀었지만 기업들의 경영 사정이 안 좋아졌다면 더 내놓으라고 하기 전에 정책 성과부터 제대로 돌아봐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반발했다.

○ 냉가슴 앓는 재계

재계에서는 내부적으로 불만이 많지만 공식적으로 반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최근 포스코를 필두로 한 검찰발 대기업 사정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다.

D기업 관계자는 “정부 집권 3년 차를 맞아 집중적으로 시작된 대규모 기업 수사가 기업들엔 상당히 부담스럽다”며 “경제는 심리라면서, 지금같이 경제 사정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본격적인 기업 두드리기에 나서면 과연 경기가 활성화될 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이런 분위기는 경제단체의 대응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한국경영자총협회 대한상의 전국경제인연합회 중소기업중앙회는 17일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 논의에 반대하는 입장을 공동 발표하는 방안을 두고 몇 번씩 입장을 바꾸며 혼란을 야기하기도 했다. 한 관계자는 “경제단체가 재계 입장을 대변해야 하면서도 정부나 노동계 반발에도 민감해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지현 jhk85@donga.com·강유현·최예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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