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직접투자로 국내 경제가 활성화되는 선순환의 성장 고리가 점차 약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통상 한국 기업이 해외에 투자해 공장을 지으면 부품과 원자재 등을 국내에서 수입하기 때문에 국내 기업의 수출과 고용이 늘어난다. 그러나 최근 해외직접투자의 성격이 제조업에서 금융과 부동산업으로 바뀌면서 이런 효과를 거두는 게 점차 어렵게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같은 추세는 동아일보가 17일 현대경제연구원과 한국수출입은행 자료 등을 활용해 1980∼2014년 35년간의 국내 기업 및 개인의 해외투자 현황을 분석한 결과 나타났다.
한국의 해외직접투자 규모는 2000년 52억9000만 달러(약 5조9700억 원)에서 2014년 247억 달러(약 28조947억 원)로 최근 15년간 약 5배로 성장했다. 그러나 한국 기업이 해외에 설립한 현지법인이 국내에서 원자재 등을 수입하는 비중은 2007년 46.8%에서 2013년에는 37.7%로 약 10%포인트 줄었다. 제조업 투자 비중이 떨어지고 저금리의 영향으로 금융과 부동산업의 해외직접투자가 늘면서 수출 유발 효과가 줄어든 때문이다.
전체 업종 중 제조업 투자 비중은 2001년 74.5%로 정점을 찍었다가 하락하면서 지난해 29.4%까지 떨어졌다. 해외직접투자의 수출 유발 효과(해외직접투자액 대비 수출량)도 2007년 249.4%에서 2013년 162.9%로 급감했다.
○ 사라지는 선순환 효과
지난해 1월 포스코는 멕시코 타마울리파스 주 알타미라 시에 연산 50만 t 규모의 제2 자동차강판 공장을 준공했다. 이 회사는 지난해 37만 t을 생산해 멕시코에 있는 글로벌 자동차 업체에 판매했다. 하지만 이 중 20만 t은 한국의 수출 물량을 멕시코 공장으로 이전한 것이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포스코로서는 물류비용을 줄여 가격 경쟁력이 생기면 멕시코는 물론이고 미국까지 수출할 수 있지만 그만큼 한국에서의 고용이나 투자 효과는 사라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해외직접투자에 대한 성격이 변하면서 국내 산업의 활성화에 미치는 영향이 줄어들고 있다. 특히 해외 기업에 대한 지분 투자나 금융과 부동산 투자가 급증해 투자소득은 늘어났지만 쌓인 돈이 내수경기 활성화로 연결되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은행은 2011년 기업의 해외직접투자가 1% 증가할 때 수출은 0.1∼0.3%가 늘어나는 것으로 추정했지만 최근에는 이런 효과를 거두는 것이 점차 어려워지는 추세다. 한국 기업이 현지에서 중간재를 사들이는 비율이 급증한 것은 중국의 정책적 영향도 크다. 중국 정부의 ‘차이나 인사이드’ 정책은 해외 기업이 자국 내로 부품이나 원자재 등을 수입하는 것을 통제하고 있다.
실제로 1990년대 중반 중국 베이징(北京)에 진출해 현지공장에 자동차 부품을 납품하는 중견기업인 M사는 진출 초기에는 한국에서 관련 부품을 전량 가져갔다. 그러나 2013년경부터는 현지에서 부품을 조달하는 비중이 80%를 넘어섰다.
○ 저금리에 뭉칫돈은 해외로
지난해 12월 국내 투자업계는 국민연금이 부동산에 투자해 5년여 만에 매각 차익만 1조 원을 거뒀다는 소식에 들끓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유럽의 부동산 시장이 휘청이던 2009년 영국 HSBC 본사 건물을 1조5000억 원에 사들여 엄청난 수익을 거둬들인 것이다.
한국의 해외직접투자 중 금융 및 보험업에 대한 투자는 1.0%(1995∼1999년 평균)에서 12.0%(2010∼2014년 평균)로 늘었다. 부동산업 및 임대업 역시 같은 기간에 3.9%에서 8.5%로 증가했다. 투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면서 국내에서 투자할 곳을 찾지 못하는 연기금이나 공제회, 자산운용사들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격이 내려간 전 세계의 각종 금융상품과 부동산에 투자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해외직접투자 효과 살리려면 ▼
한국산 장비 구입-협력업체 동반진출 필요
해외직접투자가 늘어도 국내 경기에 미치는 효과가 제한적인 것은 불가피한 현상이라는 시각도 적지 않다. 이재우 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팀장은 “해외직접투자 기간이 길어지면 현지법인들이 자연스럽게 현지화하면서 투자국의 수출이나 고용을 촉진하는 효과는 줄어든다”고 말했다.
다만 국내 기업이 해외로 진출할 때 내수 효과를 극대화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가령 현대자동차가 해외에 공장을 건설할 때 땅값을 제외하면 약 1조 원이 든다. 이때 각종 기계장비 등을 국내에서 대부분 구매하면 7000억 원 정도는 국내 투자와 같은 효과를 낸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현대·기아차가 부품업체들과 해외로 동반 진출하는 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현지 부품업체에 의존하는 현상을 막으려는 비즈니스 모델”이라고 말했다. 급증하는 투자 소득이 내수 경기 활성화에 쓰이도록 유도하는 것도 중요하다. 기업들이 국내에서 고급 서비스 산업에 투자하도록 유도하고 이를 소비로 연결시키는 것도 방법이다.
정민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원은 “글로벌 경쟁을 하는 국내 기업들한테 해외로 나가지 말라고 붙잡는 것은 한계가 있고 경쟁력 없는 기업을 유턴시키는 것도 무의미하다”며 “결국 고부가가치의 산업군이라도 국내에서 고용과 수익을 창출하도록 정책적으로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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