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호텔서 유카타 슬쩍, 나라망신 시켰네요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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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주제는 ‘정직’]<50>호텔-항공기서 얌체짓 그만

공무원 이모 씨(38)는 일본 출장을 갈 때마다 호텔에서 유카타(일본 전통 의상)를 가져온다. 몸에 땀이 많아 여름에 집에서 입기 좋은 데다 반일 감정이 있어 뭔가 통쾌한 느낌도 들기 때문. 이 씨는 평소 친구들에게 이런 사실을 자랑스럽게 말했고 어이없어 하는 일부 친구들에게는 “일본이 일제강점기 우리에게 빼앗아 간 것이 어느 정도인데…”라며 오히려 당당한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이 씨는 톡톡히 망신을 당한 뒤 ‘비치품 절도’를 그만뒀다. 도쿄의 한 호텔에서 체크아웃을 하며 지갑을 찾기 위해 가방을 열었다가 그 안에 숨겨 놓았던 호텔 유카타를 들킨 것이다. 이 씨는 “출장 때 자주 가는 단골 호텔이라 프런트 직원들 중에는 내 신분을 아는 사람도 많았다”며 “직원이 ‘왜 가져가느냐’고 묻지는 않았지만 그 순간 나라 망신을 시킨 것 같아 얼굴을 들 수 없었다”고 말했다.

호텔, 항공기, 기차 등에 있는 비치품을 슬쩍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예가 비행기에서 주는 기내담요를 들고 나오는 ‘얌체 승객’들이다. 기내담요는 촉감이 좋고 따뜻한 데다 부피도 작아 인기가 높다. 피크닉에서는 깔개로, 차 안에서는 무릎담요로, 심지어 명절 때는 화투담요에 안성맞춤이다. 어차피 공짜라 분실에 대한 아쉬움도 없다. 해외 배낭여행을 떠나는 대학생들에게도 기내담요는 다목적으로 쓸 수 있는 탐나는 물건이다. 결혼 8년 차 주부 신모 씨(37)는 매년 남편과 해외여행을 다녀올 때마다 기내담요를 챙겨 온다. 크게 쓸 일은 없지만 일종의 ‘여행 기념품’의 의미다. 신 씨는 “따져 보지는 않았지만 결국 내가 내는 비싼 항공권료에 다 포함된 것 아니냐”며 “한 번도 양심의 가책을 느껴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한때 이 같은 기내담요 절도를 막기 위해 항공사들은 다양한 고육책을 쓰기도 했다. 한 항공사는 담요 반납 관련 기내방송을 별도로 내보내기도 했고, 아예 헤드셋처럼 일괄 수거하기도 했다. 한 항공사는 내부적으로 담요에 전자태그를 부착해 기내 밖으로 가지고 나갈 경우 경고음을 울리게 하는 방법도 고려했지만 부작용이 만만치 않을 것 같아 실행하지는 않았다.

항공사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대한항공의 경우 성수기 국제선에서 사라지는 담요는 월평균 1만여 장. 한 달에 약 8000만 원 상당의 피해를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항공 승무원 이모 씨(29)는 “심지어 기내식으로 제공되는 비빔밥 그릇과 철제 수저, 나이프까지 가져가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호텔의 경우는 숙박객들이 수건을 많이 가져간다. 호텔 수건은 일반 가정에서 쓰는 수건보다 두껍고 크기 때문에 목욕 가운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지난해 영국 배낭여행을 다녀온 대학생 박모 씨(26)는 보름 여정의 마지막 날 일부러 런던 시내의 좋은 호텔에 묵었다. 박 씨는 호텔에 비치된 수건과 목욕가운이 좋아 보여 몰래 트렁크에 챙겨 다음 날 체크아웃했다. 칫솔이나 비누처럼 1회용 물품이 아니었기 때문에 가져가면 안 되는 줄 짐작은 했지만 ‘설마 별일 있겠어’란 생각에 기념품으로 생각하고 가져왔다. 하지만 박 씨가 한국에 귀국한 뒤 런던의 호텔은 박 씨가 수건과 목욕가운을 무단으로 가져간 것을 발견하고 물품 가격에 벌금까지 매겨 총 10만 원을 박 씨의 신용카드로 청구해 빼 갔다. 박 씨는 “무심결에 한 행동이 금전적 손해는 물론이고 나라 망신까지 시킨 것 같아 부끄러웠다”고 말했다.

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호텔#항공기#나라망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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