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닝, 점수는 올라도 당신의 가치는 떨어집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20일 03시 00분


코멘트

[내가 바뀌면 세상이 바뀝니다]
[3월의 주제는 ‘정직’]<51>미래를 갉아먹는 커닝

워킹맘 A 씨는 지난해 초등학교 1학년인 아이의 담임교사로부터 “학교에 와 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아이가 시험 도중 커닝을 하다 걸렸기 때문이다. 아이가 받아쓰기 시험 때 급수표(초등학교에서 매 학기 배워야 할 단어와 문장을 정리해 받아쓰기 연습용으로 나눠주는 종이)를 필통 밑에 깔아놓고 커닝을 해서 100점을 받았다는 것이다. 담임교사는 “이미 두 번 걸려서 주의를 줬는데도 고치지 않고, 급기야 다른 아이들까지 커닝을 따라 하게 됐으니 집에서 잘 지도해 달라”고 당부했다.

집에 돌아온 A 씨는 아이에게 “왜 나쁜 짓을 했느냐”고 야단을 쳤고, 아이는 “엄마에게 칭찬을 받고 싶었다”며 펑펑 울었다. 가족 상담을 받은 결과 아이는 인정받고 싶어 하는 성향이 높은 편이었고, 부모는 자신들이 공부를 잘했기에 은연중에 부담을 주고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상담사의 지도에 따라 결과가 아닌 과정에 대해 칭찬하는 훈련을 하면서 받아쓰기에서 50점을 받아도 움츠러들지 않는 아이로 성격이 바뀌었다.

어릴 때는 커닝이 별 죄의식 없이 시작되지만 이를 조기에 바로잡지 않으면 본격적인 경쟁이 붙는 중고교 단계에서는 심각한 결과로 이어진다.

지난 겨울방학 서울의 한 특수목적고 대비 학원에서는 우열반을 가르는 레벨 테스트에서 한 학생이 기출 어휘를 빽빽이 적은 커닝페이퍼를 사용해 최우수반에 편성됐다. 다른 학생의 부모들이 학원에 항의를 했지만 해당 아이의 아버지는 “증거도 없이 누명을 씌우면 고소하겠다”며 끝내 자녀를 최우수반에 넣었다. 학원에서 시험 감독을 강화하면서 이 학생은 두 달 만에 두 단계 낮은 반으로 강등됐고, 이 소문은 학교에까지 퍼져 따돌림을 당하게 됐다. 스펙 경쟁이 치열한 대학가에서는 상대평가가 확대되면서 예전처럼 ‘커닝도 낭만’이라는 분위기는 이미 사라졌다. 서울지역의 한 대학 행정학과 교수는 “기출문제나 이른바 ‘족보’를 커닝해서 풀 수 있는 문제를 내면 학생들이 항의를 하기 때문에 신경을 많이 쓴다”면서 “커닝하는 학생이 눈에 띄면 다른 학생들이 그 자리에서 신고할 정도로 살벌하다”고 전했다.

반면 일자리와 직결된 극단적인 커닝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 연세대 로스쿨 학생이 교수의 컴퓨터를 해킹해 시험지를 빼내려다 적발된 것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한국농어촌공사 승진시험에서는 수천만 원을 받고 문제지를 유출한 직원이 경찰에 적발됐고, 2013년에는 충남도교육청 교육전문직 시험에서 교장과 교사들에게 시험 문제를 유출한 교육감과 공무원들이 줄줄이 구속되기도 했다.

교육학자들은 커닝이 단순히 부적절한 행위임을 넘어서 자존감과 미래를 갉아먹는 행위라고 지적한다. 싱가포르 한국국제학교 교장을 지낸 박정희 인천 은봉초 교장은 “국가 수준에 따라 커닝을 하는 정도에도 차이가 있는데 우리의 국격을 생각하면 더이상 감독과 통제만으로 커닝을 막아서는 안 된다”며 “아이들에게 화려한 성적표보다는 초라하지만 정직한 성적표가 훌륭하다는 점, 또 이제는 정직해야만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점을 가르쳐서 자정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