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이번엔 수능 대책 번복… 朴 정부 정책 누가 믿겠나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21일 00시 00분


지난해 대학수학능력시험은 수학B 영역에서 6630명의 만점자가 나온 ‘사상 최악의 물수능’이었다. 비판 여론이 커지자 교육부는 17일 “적절한 변별력을 확보해 지난해 수능처럼 실수를 누가 덜하느냐로 등급이 결정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사흘 만인 어제 교육부는 “올해 수능도 지난해(쉬운 수능)와 같은 출제 기조를 이어갈 것이니 학생과 학부모는 부담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지난번 발표를 뒤집었다.

17일에 나왔던 수능 대책은 EBS 연계 출제, 특정 학맥 중심의 출제위원 구성 등 구조적 문제를 건드리지 않은 한계가 있어 보완이 불가피했다. 그러나 20일 대책은 사교육비 증가로 여론이 나빠질 것을 우려한 청와대의 질책 때문이라니, ‘수능의 정치화’가 더 분명해진 셈이다.

현 정부 들어 정치적 이유로 정책이 번복된 것이 교육부만의 행태는 아니다. 올 1월에만 연말정산 관련 세금 정책, 건강보험료 부과 체계 개편, 주민세 및 자동차세 인상안 등 세 건이 수정 보완 번복되는 소동이 벌어졌다. 주민세는 1월 25일 오전에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이 인상을 추진한다고 밝혔다가 반나절 만에 뒤집혔다. 정치권의 반대 때문이라지만 행자부는 이유를 설명하지 못했다. 2013년 8월에는 정부가 오랫동안 준비해 발표했다는 세제 개편안이 민심의 역풍을 맞자 닷새 만에 수정되기도 했다.

정책 변경 자체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다. 민심과 동떨어지고 문제가 있는 정책은 가능한 한 빨리 바꾸는 게 옳다. 그러나 각 부처에서 원칙과 소신을 갖고 만든 정책이 청와대나 정치권의 입김에 불과 며칠 만에 번복된다면 장관은 허수아비가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정책 회군’의 반복을 막고 대통령의 국정철학과 정무적 판단까지 포함한 정책 발표를 위해 청와대는 2월 정책조정수석을 신설했다. 청와대와 내각, 또 당정청이 함께 정책을 협의하고 조율하는 정책조정협의회까지 만들었다. 그럼에도 수능 정책에서 혼선이 되풀이됐으니 정책조정수석과 정책조정협의회는 무엇을 한 것인가.

행정은 일관성과 예측성이 생명이다. 정책이 지금처럼 오락가락한다면 국민의 혼란은 말할 것도 없고 정부에 대한 신뢰 자체가 무너지게 된다. 공무원노조 등 이익단체들에 ‘조금만 반대하면 정책을 번복시킬 수 있다’는 신호를 줄 경우 대통령이 입만 열면 강조하는 4대 개혁도 물 건너갈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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