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 전 총리는 이미 생전에 20년에 걸쳐 아들 리셴룽 총리에게 권력이 승계되도록 지원해 왔고 총리직을 그만둔 1990년부터 현실 정치와 거리를 두었기 때문에 그가 세상을 떠났다고 해서 싱가포르 정치가 불안해진다거나 국민이 동요할 가능성은 낮다.
하지만 타계 자체가 싱가포르 역사는 물론이고 아시아 개발 역사를 마감하는 상징적 사건인 데다 싱가포르로서는 경제개발과 성장을 위해 엄격한 국민 통제를 했던 ‘리콴유 시대’가 막을 내리는 것이어서 사회가 점차 변화를 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장기적으로는 국민의 자유 확대와 분배에 대한 욕구가 정치권의 변화를 주도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미 외교안보 전문매체 더디플로맷은 “리콴유는 경제발전이 정치적 통제를 상쇄할 수 있다는 논리로 실적 위주의 정책을 펼쳤지만 빈부격차가 커지면서 후계자들은 같은 노선을 더는 추구할 수 없게 됐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싱가포르는 빈부격차를 보여주는 지니계수가 2013년 기준 0.478로 선진국 중에서도 가장 높다. 이런 탓인지 눈부신 외형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국민 삶의 만족도는 계속 추락하고 있다. 2013년 갤럽이 발표한 141개국 국민 대상 미래전망조사에서 싱가포르는 그리스 스페인 아이티와 함께 미래에 대해 가장 비관적인 10개국 안에 들었다.
현실에 대한 불만과 미래에 대한 불안은 고국 탈출과 저출산으로 이어지고 있다. 미국 경제지 포브스에 따르면 현재 외국으로 빠져나간 싱가포르인은 30만 명에 이른다. 2012년도 여론조사 응답자의 56%는 “기회가 되면 외국으로 이민 가고 싶다”고 답했다.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자녀 수)은 1.2명으로 세계 최하위권이다. 부족한 인구를 메우기 위해 2005년 이후 매년 15만 명 이상의 이민자를 받아들이다 보니 이민자 비중이 전체 인구 556만 명의 40% 가까이로 급증했다.
민심 이반은 각종 선거로 표출되고 있다. 2006년 총선 당시만 해도 리셴룽 총리가 이끄는 집권당인 인민행동당(PAP)이 투표로 뽑는 의석 84석 중 82석을 차지했지만 2011년 총선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야당인 노동당(WP)이 6석을 차지했고 2013년 2월 보궐선거에서도 1석을 더 늘리는 이변을 연출했다. 더디플로맷은 “싱가포르의 유일한 선택지였던 인민행동당이 더이상의 민심 이탈을 막기 위해 정치 무대를 온건 야당에 개방해 나갈 가능성이 높다”며 “아마 내년 총선이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했다.
성장 위주였던 리콴유식 경제정책도 바뀔 것으로 전망된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는 “올 2월 싱가포르 정부가 상위 5% 고소득층 과세율을 기존 20%에서 22%로 올렸다”며 “이는 정부가 복지에 대한 더 많은 투자와 더 많은 분배를 약속하는 식으로 리콴유식 자본주의를 수정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평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