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러스하게 한 말이 분위기를 썰렁하게 하는 경우가 있다. “대한민국의 청년이 텅텅 빌 정도로 한번 해보세요. 다 어디 갔냐고. 다 ‘중동 갔다’고”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도 그렇다. 19일 청와대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한 말이다. 그날 아침신문에 청년실업률이 사상 최고라는 기사가 실렸다. 중동 순방을 마치고 돌아온 흥분이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청년들 일자리를 걱정해서 한 말이었겠지만 중동 근무의 어려움에 대한 공감이 담겨 있는 것 같지 않아 듣기 거북했다.
▷그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서울 신림동 고시촌의 한 카페에서 청년들과 모임을 가졌다. 일부 청년단체 회원들이 영화 ‘친구’의 대사 “니가 가라, 하와이”를 패러디한 팻말 “청년들을 중동으로 보내라니, 니가 가라”를 들고 구호를 외쳤다. 1970년대 건설근로자들은 가족과 떨어져 술 오락도 자유롭게 할 수 없는 중동에서 사막의 열기와 싸우며 돈을 벌었다. 그 시절 청와대에서 살았던 박 대통령이 ‘중동 가라’는 말을 할 때는 근로자 가족들의 마음으로 돌아가서 그 말이 의미하는 바를 한 번 정도는 생각해 봤어야 한다.
▷박 대통령은 1월 신년기자회견에서 ‘대면보고가 너무 없다’는 기자의 비판에 배석한 장관들을 돌아보며 “그게 필요하다고 생각하세요”라는 질문을 던져 웃음을 끌어냈다. 그러고는 기자를 향해 “청와대 출입하시면서 내용을 너무 모르시네요”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기자의 날 선 질문을 유머로 받아넘겼다고 찬사를 보낸 이도 있었지만 그때 장관들이 웃는 것 말고 무슨 반응을 보일 수 있었을까.
▷박 대통령도 자신이 유머를 잘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안다. 그래서 대통령이 되기 전에는 수첩에 재미난 말을 써가지고 다니면서 들려주곤 했다. 썰렁한 유머여도 나름대로 애쓰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즉흥적인 유머는 공감 능력의 소산이다. 전개되는 상황을 짧은 시간에 파악하고 미묘한 균열의 선을 파고들어가 웃음을 끌어내는 것이다. 효과적인 유머를 하고 싶다면 공감 능력부터 키우라고 말하고 싶다.
댓글 123
추천 많은 댓글
2015-03-25 06:47:23
앉아서 정보취득하는 논설위원님께....현재 모 그룹에서는 글로벌시대에 맞게 많은 지식근로자가 중동에서 일하고 있어요....중동등 해외로 나가자고 하니까. 막노동하는 육체근로자만 생각하는 옛날사람이네요ㅜㅜ.현재 중동,동남아시아등 많은 지식근로자가 일하고 있어요.확인!..
2015-03-25 08:18:25
송평인 이사람은 한겨래신문에 있어야 할 사람이 동아일보로 온것 같다. 세계를 한마당으로 보는 오늘세계에서 중동이건 어디건 가서 일을 찾아야지, 그옛날 중동 열사에서 일하든것만 가지고 힘들테니 "니가가라" 라고 하는 못난놈들의 편을 들다니. 당신 참 한심하다
2015-03-25 08:49:50
신문이 말하는 식으로 말한다면 누가 이 대한민국에 태여나라고 말한 사람 있나? 미국처럼 땅 넓고 자원 많은 나라에 태여날 것이지. 우리의 한계가 여기이고 살아가려니 열사의 땅에도 갈 수 있는 것 아닌가? 지금은 옛날과 달라 선진국 대우 받으며 일할 터인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