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가득 여드름 났던 소년이 ‘군인 아저씨’ 소리를 들을 만큼 시간이 흘렀다. 청년이 된 소년은 2010년 3월 26일 그날 이후 5년 동안 가슴 한편에 늘 형을 품고 있다. 지난해 1월 “형처럼 바다를 지키겠다”는 형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해병대에 입대한 이상훈 상병(21·사진) 얘기다. 이 상병의 형은 천안함 폭침으로 희생된 고 이용상 하사(당시 22세)다.
입대 후 1년이 훌쩍 지난 20일 경기 김포시의 해병대 2사단에서 만난 이 상병은 밝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 상병은 매일 반복되는 훈련으로 근육량이 증가해 체중이 늘어 비교적 작은 체구에도 단단한 체형이었다. “형과의 약속을 지키겠다고 입대했는데, 지금까지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느냐”는 첫 질문에 이 상병은 “입대 후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라면서도 “형도 이런 훈련을 받았겠구나 싶어 형이 더 잘 이해되는 것 같다”며 쑥스럽게 웃었다. 행군할 때면 이 상병은 형과 더 가까워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했다. 끝나지 않는 행군로를 완전 무장한 채 걸을 때면 ‘형도 힘든 이 길을 갔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상병은 여섯 살 나이 차 때문에 사실 형과의 추억은 별로 없다. 이 상병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외국으로 어학연수를 갔다. 형도 이 상병과 번갈아 어학연수를 다녀왔다. 그래서 이 상병은 형과 이야기를 많이 해 보지 못한 게 안타깝다. 지난해까지 형이 세상을 떠났다는 게 실감나지 않았던 것도 그래서일지 모른다. 이 상병에게 형은 아직 군복무를 하고 있어 곧 휴가를 나올 것만 같은 존재다.
5년 전 그날은 이 상병에게 선명하게 기억된다. 금요일이었던 그날 고등학교에 갓 입학한 이 상병은 귀가 후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여유롭고, 일상적인 밤이었다. 오후 10시경 속보로 ‘백령도 인근 해상에서 천안함 침몰’이라는 자막이 뜨기 전까지는 그랬다. 옆에서 같이 텔레비전을 보던 이 상병의 어머니는 “용상이가 저 배에 타고 있다”며 울부짖었다. 그때는 그 오열이 5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어질지 이 상병은 몰랐다.
입대할 당시 “자식을 삼킨 바다에 또 자식을 보낼 수 없다”는 이유로 반대했던 어머니는 요즘 들어 “자랑스럽다”고 이 상병을 격려한다. 지갑에 늘 갖고 다니는 가족사진 속 형의 미소를 볼 때면 가슴이 아리지만 형 덕분에 바다를 지킬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다만 아직도 ‘천안함 침몰은 북한의 소행이 아니다’라는 유언비어가 떠도는 것을 보면 가슴이 답답하다. 앞으로 남은 군 생활은 7개월여.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군 생활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광고업계에서 일하는 게 꿈인 이 상병은 “형의 죽음과 천안함 폭침의 진실을 알리는 게 내 소임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천안함 사건이 잊혀지지 않게 노력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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