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되기가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힘든 시대다. 혹자는 대학생들이 도전을 마다한 채 편안하고 정년이 보장된 공무원으로만 몰리는 세태를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학에 들어올 때부터 공무원을 꿈꾸며 열심히 노력하는 경우는 다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목숨을 걸고 일하는 소방공무원이 되기 위해 4년간 열심히 노력한다면 오히려 격려해야 할 일이다. 취업난이 심하다고 해도 소방공무원 선발 시험의 경쟁률은 보통 20 대 1~50 대 1로 높다. 이 수치는 경쟁률이 상대적으로 낮은 구조 및 구급 분야 경쟁률까지 포함한 것이어서 소방 분야 채용 경쟁률은 이보다 훨씬 세다.
원광대 소방행정학과는 소방공무원을 전국에서 가장 많이 배출하고 있는 학과다. 교수 4명에 입학정원 55명인 학과가 소방공무원 명가로 자리 잡은 이유가 궁금하다.
정기성 원광대 소방행정학과 교수는 가끔 한 끼에 식사를 두 번 하는 경우가 있다. 영업을 하는 사람이 저녁을 두세 번 먹는다는 얘기는 들었어도 대학교수가 밥을 두 번씩 먹는 것은 드물다. 왜일까. 3월 어느 날 오후 6시 정교수는 중요한 저녁 약속을 앞두고 샤워를 하기 위해 학교 근처 목욕탕에 들렀다가 2학년 안형준, 김성수 씨를 만났다. 정 교수가 반가운 마음에 “너희들 저녁 먹었니?”라고 물었고 제자들은 “아직 먹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정 교수는 오후 8시에 저녁 약속이 있었지만 제자들을 데리고 근처 순댓국집으로 가 저녁을 먹이고 차비까지 준 후 저녁 장소로 향했다. 교수가 저녁을 두 번 먹는 일은 소방행정학과에서는 특별한 일이 아니다. 학과 교수들 모두가 학생을 위해서라면 3번, 4번 식사를 할 각오가 돼 있기 때문이다. 최혜린 씨(2학년)는 “우리학과 교수님들과 점심 저녁을 같이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라며 “교수님이 먼저 먹자고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교수들은 주말에도 방학에도 학교에 나온다. 학생들이 언제 찾아올지 몰라 아예 연구실에서 공부를 하는 게 편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소방행정학과 교수 4명은 학교에서 지내는 시간이 집에서 지내는 시간보다 많다. 또 교수들의 집은 학교에서 10분 거리에 있어 언제든 학생과 만날 수 있다. 정기성 교수는 “교수에게 학생은 자식과 같다. 내가 조금만 희생하면 자식들이 잘사는데 최선을 다하지 않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기자는 여러 대학을 취재해봤지만 소방행정학과 교수들처럼 학생들에게 올인 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기자는 작년에 패션스쿨로 유명한 뉴욕의 FIT(Fashion Institute of Technology)를 취재했을 때 한국인 박진배 교수에게 “FIT의 경쟁력은 어머니의 마음으로 학생들을 대하는 것”이라는 말을 듣고 놀란 적이 있었다. 기자 생각에 FIT의 경쟁력은 패션산업과의 활발한 산학협력에서 나오는 줄 알았는데 의외의 대답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기자는 원광대 소방행정학과를 취재하면서 FIT 교수들보다 더 강한 제자 사랑을 확인했다.
원광대 소방행정학과는 전국 65개 소방행정학과 중에서 소방공무원을 가장 많이 배출하는 학과로 알려졌지만 그것을 가능케 했던 교수들의 열정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제 대학을 선택하는 기준은 대학의 간판보다는 학과가 되어야 하고 학과의 선택기준에 교수의 열정도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
소방행정학과 최현정 씨(3학년)는 “소방행정학과에 와서 행복하다”고 말한다. 최 씨는 그 이유를 “학생회 일을 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작은 사회를 경험하는 등 대학을 즐기면서도 소방공무원의 꿈을 키워나갈 수 있는 환경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최 씨는 “대학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일은 학생들을 취업 걱정 없게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우리학과는 좋은 시스템과 든든한 교수들 덕에 꿈을 실현할 수 있다”고 했다.
최 씨의 말처럼 소방행정학과의 커리큘럼은 소방공무원이 되는데 적합하도록 짜여있다. 이수학점 130학점 중 90학점이 공무원 시험과 연관돼 있다. 학과공부만 열심히 하면 공무원 시험을 보기위해 따로 학원에 가지 않아도 된다. ‘소방학개론’ ‘소방관계법’ ‘행정법’ ‘국어’ ‘국사’ ‘영어’ 등 7급과 9급 소방공무원 시험에서 요구하는 모든 과목이 필수과목이고 그중 어려운 과목과 시험관련 과목들은 “한 살이라도 덜 먹었을 때 공부를 더 할 수 있도록” 1, 2학년 커리큘럼에 넣었다. 또 영어가 공무원 시험의 당락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판단에 따라 3학년까지 전공필수로 정해놓고 영어공부를 독려한다. 학과는 매주 화요일 2학점짜리 보건학 강의에 체력실기를 넣어 소방공무원 체력시험에도 대비한다. 학생들은 이와 별도로 축구, 배드민턴 동아리를 만들어 체력을 키운다.
학사관리는 매우 엄격하다. 학과 수업이 공무원 시험에 관련된 거의 모든 과목을 다루고 있고, 공무원의 가장 중요한 덕목인 성실과 봉사는 수업참석으로 확인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정기성 교수의 ‘행정법’ 과목의 경우 3번 결석하면 무조건 F학점을 준다. 3학점짜리 강의는 2+1 형태로 하는 경우가 많아 3번 결석하면 진도를 따라가기 힘들기 때문에 수업에 빠지지 말라는 의미도 있다. 서강대의 출석제도를 벤치마킹했다지만 서강대보다 2배나 강화된 출결관리다. 덕분에 학과의 모든 수업의 참석률은 100%에 가깝다. 모든 전공과목 수업이 일주일에 한 번 쪽지시험을 보고 수업시간마다 교과서 지참 여부를 검사해 성적에 반영한다.
이것만이 아니다. 커리큘럼에는 없지만 교수들이 직접 주말과 방학을 이용해 공무원 시험 관련 교과목에 대한 심화수업과 특강을 한다. 이는 이 학과가 공무원을 많이 배출하는데 일조하고 있다. ‘행정법’ ‘소방관계법’ 등 소방공무원 시험 필수과목은 학과 수업에 더해 주말 혹은 방학을 이용해 기출문제 해설까지 포함한 심화수업을 한다. 고경언 씨(4학년)는 “3학년 때 들었던 소방관계법을 방학 때 심화학습으로 다시 공부했는데 정기성 교수께서 시험에 나올 만한 것들만 정리한 책을 자비로 만들어서 나눠주셨다”며 “전문학원 강사보다 교수님이 더 잘 가르치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혼자 공부해서 한국사 특강을 하는데 “시험에 나오는 문제에는 패턴이 있다. 시험에 자주 나오는 것들을 정리해서 학생들에게 특강 형식으로 알려 준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한국사 공부를 위해 50여 권의 역사책을 연구실과 집에 놓고 수시로 들춰본다.
2004년 문을 연 소방행정학과는 올해로 6번째 졸업생을 배출했는데 지금까지 배출한 공무원만 165명이 넘는다. 이 중에는 15명의 경찰관과 최연소 소방간부 후보생, 여군사관후보생 3명도 포함돼 있다. 학과는 작년 40명에 이어 올해도 25명의 공무원을 배출해 ‘소방공무원 배출 명가’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올해 학과의 취업률은 80%. 이 수치는 더 늘어날 전망인데 ‘소방공무원이 되려면 원광대로 가라’는 말이 타시도까지 퍼지면서 우수한 학생이 들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광주 출신 신입생인 남병호 씨는 “담임선생님이 소방공무원이 되려면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원광대 소방행정학과를 가라고 추천했다”며 “들어와 보니 선후배간의 유대도 좋고 동문선배들도 자주 찾아와 소방공무원의 비전에 대해 설명해주고 있어 학과 선택을 잘 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학과의 졸업생은 공무원 말고도 금융기관, 대기업, 소방공사업체 등으로 취업분야를 확대해 가는 중이다. 해마다 7% 정도가 공무원 이외의 분야로 진출한다. 김형두 교수는 “선진국일수록 국민안전에 대한 법적 제도적 장치가 잘 마련돼 있고 관련 산업이 발달돼 있어 안전 분야 전문가의 진출 분야가 점점 넓어가고 있다”며 “기존의 소방공무원에 대한 수요도 늘어날 것이고 소방전공자들이 다른 안전산업 분야로 진출하는 사례도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2014년 학과의 장학금 지급률은 60%이고 장학금 평균액수는 120만 원. 올해는 장학금 지급률을 65%로 끌어올릴 예정이다. 학과는 2016학년도에 올해보다 10명 늘어난 65명을 뽑는다. 수시에서 32명을 뽑고 정시에서 33명을 뽑을 예정. 작년 수시 일반전형 합격자 성적 평균은 2.5~2.8등급이었고 정시합격자의 수능 성적 평균은 3.5등급이었다. 문이과 교차 지원을 허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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